김홍도의 '낭원투도'. ⓒ 간송미술문화재단
김홍도의 '낭원투도'. ⓒ 간송미술문화재단
오래전부터 서울 성북동은 예술의 향취가 묻어나는 동네였다. 1930년대에는 소설가 이태준과 시인 한용운, 화가 김용준이 이곳에 살았다. 1938년에는 간송 전형필이 보화각(지금의 간송미술관)을 세웠다. 이후에도 권진규와 이쾌대 등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 작가들이 성북 일대에 작업실을 꾸렸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성북동은 정·재계 거물들의 저택과 각국 대사관저가 모인 '부촌'으로 더 유명해졌고, 주머니가 가벼운 예술가들이 동네를 떠나면서 '예술 동네'라는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그랬던 성북동이 최근 다시 문화예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제이슨함과 BB&M, 대구 우손갤러리의 서울 지점 등 갤러리들이 차례로 들어서고, 라인문화재단이 내년 4월 개관을 목표로 미술관을 짓고 있어서다. 덕분에 올해 프리즈 서울은 처음으로 성북동을 삼청동·한남동·청담동·을지로와 함께 주요 미술관·갤러리 밀집 지역으로 분류했다.

성북구와 성북문화재단 등이 오는 20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여는 첫 '성북아트위크'도 이런 바람을 타고 마련된 행사다. 성북구 곳곳에 위치한 미술관·박물관과 갤러리 등 21곳이 연계 전시를 열고,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살던 옛집과 한용운의 집 심우장 등 역사 공간 11곳에 설치 작품이 들어선다.
오세창이 김홍도 작품에 쓴 상서.
오세창이 김홍도 작품에 쓴 상서.
성북동 미술의 중심에는 간송미술관이 있다. 지금 이곳에서는 간송 전형필 탄신 120주년 특별전 '상서(箱書), 컬렉션을 읽다'가 열리고 있다. 간송은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장인에게 의뢰해 크기에 꼭 맞는 오동나무 상자들을 짰다. 상자 뚜껑에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작품 이름과 평가, 내력을 먹으로 적었다. 이렇게 상자 위에 적은 글을 '상서'라고 한다.

간송미술관은 상서 30건 61점과 유물 21건 45점을 짝지어 내놨다. 김홍도의 '낭원투도' 옆에 오세창이 뚜껑에 쓴 "단원 인물의 걸작으로, 근래 보기 드문 아름다운 작품"이란 글을 함께 소개하는 식이다. 미술관 건물 앞에 새로 들어선 조선의 석호상 한 쌍도 눈여겨볼 만하다. 관람료는 성인 5000원, 전시는 12월 6일까지.
성북미술관 전시에 나오는 서세옥의 '남향집'.
성북미술관 전시에 나오는 서세옥의 '남향집'.
성북미술관 전시에 나오는 서도호의 '작은문;지붕'.
성북미술관 전시에 나오는 서도호의 '작은문;지붕'.
오는 20일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세옥·서도호: 어루만지다(撫)'도 개막 전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수묵추상 거장 서세옥(1929~2020)은 성북동에서 50년 넘게 살았고, '집의 작가'로 불리는 아들 서도호(64)는 아버지가 1970년대에 직접 설계해 지은 이 한옥에서 자라 그 기억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부자(父子)의 작품을 함께 만날 기회다. 관람은 무료, 전시는 12월 20일까지.

갤러리 전시로는 제이슨함에서 열리고 있는 재미교포 작가 마이크 리(43)의 개인전 '아이딜 바이 더 타이드(Idyll by the Tide)'가 눈에 띈다. 해변에 모인 가족과 연인, 친구, 홀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그린 신작 회화들을 다음달 1일까지 소개한다. 우손갤러리 서울에서는 일본 화가 이다 유키마사의 전시가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BB&M에서는 같은 날 남다현의 개인전 '더 리얼 리얼(The Real Real)'이 개막한다.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을 일상적인 재료로 다시 만드는 작가다.
제이슨함에 전시 중인 마이크 리의 신작 'Afternoon Picnic among the Dunes'(2026).
제이슨함에 전시 중인 마이크 리의 신작 'Afternoon Picnic among the Dunes'(2026).
고려대박물관에 나온 변시지의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1982).
고려대박물관에 나온 변시지의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1982).
이 밖에도 고려대박물관에서는 화가 변시지(1926~2013) 탄생 100주년 특별전이 다음달 18일까지, 최만린미술관에서는 조각가 최만린·박병욱의 2인전 '집: 두 조각가를 잇다'가 다음달 28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