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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 '최소의 붓질'이 만든 걸작
예술의전당서 스페인 미술展
벨라스케스 '조카 추기경' 전시
'벼락출세' 아스탈리 모습 묘사
모자를 삐딱하게 고쳐서 그려
벨라스케스 '조카 추기경' 전시
'벼락출세' 아스탈리 모습 묘사
모자를 삐딱하게 고쳐서 그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에 걸린 ‘카밀로 아스탈리(팜필리 추기경)의 초상’(1650·사진)은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벨라스케스 연구의 권위자인 조너선 브라운 전 뉴욕대 교수는 이 그림에 대해 “벨라스케스의 작품 중 가장 붓질을 아낀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도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물감으로 찍은 점은 단추로, 무심히 그은 듯한 붓 자국은 망토로 보인다.
스페인 남부 세비야에서 태어난 벨라스케스는 스물네 살이던 1623년 국왕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왕실 소속 전속 화가)가 된 후 평생을 ‘왕의 화가’로 살았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벨라스케스는 “궁전에 들일 그림과 조각을 사 오라”는 왕명을 받고 이탈리아 로마에 머무르고 있었다.
로마에서 그는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비롯한 교황청 사람들의 초상을 여러 점 그렸다. 이 그림의 주인공 아스탈리는 교황의 먼 친척이었는데, 추기경으로 임명되는 ‘벼락 출세’를 했다. 당시 교황들은 이렇게 친척을 추기경으로 세워 오른팔 역할을 맡기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스탈리를 ‘조카 추기경’이라 불렀다.
초상화의 구성은 단출하다. 가로 48.6㎝, 세로 61㎝ 캔버스에 인물의 모습을 가슴께까지만 그렸다. 화려한 장식이나 배경은 없다. 추기경의 붉은 모자와 어깨를 덮는 붉은 망토, 흰 옷깃과 얼굴이 전부다. 캔버스와 거리를 둔 채 자루가 긴 붓을 과감하게 휘두른 탓에 붓질은 성기다. 망토의 단추는 진한 물감을 찍은 점 몇 개고, 얇게 바른 물감 사이로는 캔버스 천의 올이 비친다.
모자는 비스듬히 기울어 있다. X선 분석 결과 벨라스케스는 처음에 모자를 반듯하게 그렸다가 기울어진 모양으로 다시 고쳐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갓 추기경이 된 모델의 우쭐한 모습을 삐딱한 모자에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벼락출세한 아스탈리의 끝은 좋지 않았다. 그림을 완성한 뒤 4년이 흐른 1654년, 교황은 당시 스페인 땅이던 나폴리를 공격하려고 몰래 군대를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스페인 왕실과 내통하던 아스탈리가 이 계획을 몰래 스페인에 알렸다. 나폴리 공격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밀고 사실이 들통난 아스탈리는 모든 직위를 잃고 쫓겨났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