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스케스 '최소의 붓질'이 만든 걸작
스페인 미술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물감을 몇 번 쓱 칠한 붓 자국만 보인다. 하지만 한두 걸음만 물러서면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사람의 모습이 화폭에 떠오른다. 몇 번의 붓질로 현실의 인상을 재빨리 화폭에 옮겼다는 점 때문에, 벨라스케스를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꼽는 이들도 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에 걸린 ‘카밀로 아스탈리(팜필리 추기경)의 초상’(1650·사진)은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벨라스케스 연구의 권위자인 조너선 브라운 전 뉴욕대 교수는 이 그림에 대해 “벨라스케스의 작품 중 가장 붓질을 아낀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도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물감으로 찍은 점은 단추로, 무심히 그은 듯한 붓 자국은 망토로 보인다.

스페인 남부 세비야에서 태어난 벨라스케스는 스물네 살이던 1623년 국왕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왕실 소속 전속 화가)가 된 후 평생을 ‘왕의 화가’로 살았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벨라스케스는 “궁전에 들일 그림과 조각을 사 오라”는 왕명을 받고 이탈리아 로마에 머무르고 있었다.

로마에서 그는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비롯한 교황청 사람들의 초상을 여러 점 그렸다. 이 그림의 주인공 아스탈리는 교황의 먼 친척이었는데, 추기경으로 임명되는 ‘벼락 출세’를 했다. 당시 교황들은 이렇게 친척을 추기경으로 세워 오른팔 역할을 맡기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스탈리를 ‘조카 추기경’이라 불렀다.

초상화의 구성은 단출하다. 가로 48.6㎝, 세로 61㎝ 캔버스에 인물의 모습을 가슴께까지만 그렸다. 화려한 장식이나 배경은 없다. 추기경의 붉은 모자와 어깨를 덮는 붉은 망토, 흰 옷깃과 얼굴이 전부다. 캔버스와 거리를 둔 채 자루가 긴 붓을 과감하게 휘두른 탓에 붓질은 성기다. 망토의 단추는 진한 물감을 찍은 점 몇 개고, 얇게 바른 물감 사이로는 캔버스 천의 올이 비친다.

모자는 비스듬히 기울어 있다. X선 분석 결과 벨라스케스는 처음에 모자를 반듯하게 그렸다가 기울어진 모양으로 다시 고쳐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갓 추기경이 된 모델의 우쭐한 모습을 삐딱한 모자에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벼락출세한 아스탈리의 끝은 좋지 않았다. 그림을 완성한 뒤 4년이 흐른 1654년, 교황은 당시 스페인 땅이던 나폴리를 공격하려고 몰래 군대를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스페인 왕실과 내통하던 아스탈리가 이 계획을 몰래 스페인에 알렸다. 나폴리 공격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밀고 사실이 들통난 아스탈리는 모든 직위를 잃고 쫓겨났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