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그림은 어둡게 느껴진다. 검정색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미술과 구별되는 스페인 미술만의 매력이 여기서 나온다.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막한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에 나온 그림 95점에서 이 특징을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다.
스페인 미술에서 검은색이 주인공처럼 자주 쓰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당시 유럽에서 검은색이 부(富)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천을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이기가 어려웠다. 염료도 비쌌다. 그런데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로그우드’라는 귀한 검은 염료 원료를 대량으로 들여와 독점했다. 다른 나라 왕과 귀족은 비싸서 엄두도 못 내던 짙은 검은 옷을 스페인 왕실과 귀족은 마음껏 입었고, 화가들은 이를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 전시 전경. / 최혁 기자
전시장의 안토니스 모르(1519~1576)가 그린 ‘제3대 알바 공작’(1549)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림에서 검은 갑옷을 입은 공작은 검은 배경 앞에 당당하게 서 있고, 붉은 띠와 얼굴만 밝다.
두 번째는 가톨릭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경건하고 진지하며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절제된 검은색을 선호했다.
이런 상황에서 화가들은 주인공을 눈에 띄게 만드는 조명 효과를 그림에 도입했다. 연극 무대에서 주변 조명을 다 끄고 주인공 얼굴에만 핀조명을 비추면 시선이 확 집중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1598~ 1664)의 ‘성녀 루치아’(1630년경)가 그렇다. 캄캄한 화면에 성녀만 밝게 표현해 성스러움을 강조했다.
성수영 기자는 한국경제신문에서 미술과 문화재 분야를 취재합니다. 미술관·갤러리 전시 리뷰부터 경매와 아트페어 등 미술시장 분석, 작가·기획자 인터뷰까지 미술 분야 전반을 주로 다룹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서양미술사 속 화가들의 삶과 명화 탄생의 뒷이야기를 조명하는 연재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을 쓰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누적 조회수 6000만 회를 넘겼고, 네이버 기자페이지 구독자는 8만여 명으로 국내 문화 분야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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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묶은 저서 '명화 시리즈' 4부작을 펴냈고, <명화의 발견>은 2025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됐습니다. '벌거벗은 세계사' '언더스탠딩' 등 방송 및 유튜브에도 때때로 출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