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돈 마누엘 라페냐, 훗날 본다드 레알 후작’(1799년).  /뉴욕히스패닉소사이어티 제공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돈 마누엘 라페냐, 훗날 본다드 레알 후작’(1799년). /뉴욕히스패닉소사이어티 제공
유럽을 대표하는 영화 강국 스페인에서 미국 오스카상, 프랑스 세자르상처럼 해마다 열리는 최고 권위의 영화시상식이 있으니 1987년 시작한 ‘고야 영화상’(Premios Goya)이다.

서양 명화를 접하면 누구나 한 번쯤 사랑에 빠지는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의 이름을 붙였다. 고야는 영화를 연출한 적도, 연기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왜 스페인은 영화상에 화가의 이름을 붙인 걸까.

고야의 그림이 스페인 문화를 대표하는 동시에 ‘영화적’이라는 게 이유였다. 스페인 영화아카데미에선 고야를 두고 “영화에 가까운 회화적 사고방식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스페인 영화 거장 카를로스 사우라는 한 발 더 나갔다. “고야가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영화감독이 됐을 겁니다. 그는 시대를 고민했고, 현실을 관찰했습니다. 삶과 자신의 작업을 열렬히 사랑했습니다.”

고야의 그림은 박제되거나 정지된 느낌이 작다. 총을 겨눈 군인과 두 팔을 벌린 남자(‘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 자식을 뜯어먹는 늙은 남자(‘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등 한 장의 그림을 보는 순간 직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다음 순간 어떤 일이 닥칠지 상상하게 된다. 영화의 극적인 한 장면을 잘라낸 듯하다.

고야의 삶도 이와 비슷했다. 관성에 얽매이거나 성공에 취해 멈추는 대신 끊임없이 화풍을 변화시켰다. 나폴레옹의 침공 등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인간의 광기를 검은 색깔로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여든 살 넘어 그린 목탄화의 제목은 이런 그의 예술혼을 보여준다. ‘나는 아직 배운다’.

고야를 미술사의 한 페이지에 새기게 만든 작품을 꼽으라면 대개 ‘검은 그림’을 떠올린다. 하지만 검은 그림만 본다면 그의 화업에서 중요한 절반을 놓치게 된다. 인간의 공포와 광기를 생생하게 포착하기 전에 고야는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본 초상화가였기 때문이다.

1786년 궁정화가에 오른 그는 국왕 카를로스 4세 등 스페인 권력의 중심에 있던 수많은 사람을 화폭에 담았다. 고야는 여기서 사람을 관찰하는 눈을 길렀다. 왕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근엄하게 만들지도, 귀족이라고 무심코 미화하지도 않았다.

이런 점에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열리고 있는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에서 눈여겨볼 작품이 있다. 미국 뉴욕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박물관&도서관(HSML) 컬렉션인 ‘돈 마누엘 라페냐, 훗날 본다드 레알 후작’이다.

1799년에 그린 이 작품은 고야가 궁정화가로 절정에 오른 시절에 그린 대형 전신 초상화다. 2m가 넘는 거대한 화폭인데도 화려한 장식을 배제했다. 옷과 배경마저 어둡다.

군인이던 라페냐의 신분 때문으로 짐작되지만, 동시에 우유부단하고 경계심이 강한 그의 성격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뻣뻣하고 앞으로 쏠린 나약해 보이는 자세 등 위풍당당한 영웅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 이를 드러낸다. 훗날 전쟁을 목도하며 군대가 몰고 오는 광기와 폭력, 죽음의 세계를 그리게 될 고야의 시선이 예고된 듯하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