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에 필요한 동물시험을 대신 수행하는 국내 주요 업체들이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신약 개발사들이 시험 설계 단계부터 해외 규제당국의 허가 대응 경험과 네트워크가 풍부한 다국적 시험수탁기관(CRO)을 선호하면서 수주 경쟁에서 밀리고 있어서다.
토종 동물시험업체 '수주 가뭄' 심화

◇“외국 CRO에 잠식 가속화”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주요 비임상 CRO 기업인 바이오톡스텍과 코아스템켐온은 202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4년째 영업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코아스템켐온은 올 상반기 103억원, 바이오톡스텍은 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비임상 CRO는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 앞서 동물 등을 이용해 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는 시험을 수행하는 업체다. 국내 시장은 코스닥 상장사인 두 회사와 정부출연 국가독성과학연구소(KIT)가 과점 형태를 띠고 있다.

신약 후보물질의 유효성 평가 등 비임상 시험을 주력으로 하는 HLB바이오스텝도 수주 부진으로 시험시설 가동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회사의 유효성 시험 가동률은 2023년 49.0%에서 2024년 27.9%로 떨어진 뒤 지난해에도 35.6%에 그쳤다. 올해 상반기에는 4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국내 비임상 CRO가 고전하는 데는 신약 개발사들의 해외 업체 선호 영향이 크다. 한 CRO 기업 관계자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대부분이 기술수출을 목표로 하다 보니 랩코프, 찰스리버 등 외국계 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보건·의료 관련 실험동물 사용량은 2025년 약 297만 마리로 2022년 314만 마리에서 3년간 5.4% 줄어들었다. 이 기간 국내 제약·의료기기·화장품 산업의 연구·개발(R&D) 투자가 35.4%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인력 유출까지 ‘악순환’ 우려

국내 CRO 기업의 수주 부진이 지속되면서 전문인력 유지에도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차별화한 보상을 제공하기 어려워지면서 우수 인력이 바이오·제약 회사 등으로 꾸준히 이탈하고 있어서다. 비임상시험은 고도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요구해 담당인력의 기술 육성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수주가 줄어 시험시설 가동률이 떨어지더라도 이런 비용은 단기간에 줄이기 어렵다. 한 국내 CRO 업체 관계자는 “국내 업체도 일부 효능·독성시험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해외 허가 경험과 글로벌 고객망에서는 대형 업체에 밀리는 게 사실”이라며 “수주 부진이 장기화하면 전문인력 유출과 시험 역량 약화로 이어져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비임상 CRO가 수익성을 회복하려면 핵심 강점인 의사소통과 신속성, 대관업무 효율 등에서 격차를 더욱 벌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인허가에 활용할 수 있는 시험 역량 강화와 첨단 기술기업으로의 전환도 장기 과제다. 전우빈 밸류파인더 선임연구원은 “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반 기술집약형 사업 모델로 전환하면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