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많을 땐 더 일하고, 적을 땐 푹 쉬자"…이창용 '파격' 제안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형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6일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 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 포럼'에서 이 전 총재와 오삼일 한은 고용노동팀장 등은 '근로시간 제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이 같이 말했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고소득 관리직·전문직 등 특정 근로자에게 최장근로시간과 최저임금 등의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제도다.

이 전 총재는 "지금까지 블루칼라 노동자가 한국 경제의 외형을 키워왔지만 이제 화이트칼라의 역량에 달려있다"며 "산업화 시대 노동 규제인 '월~금, 오전 9시~오후 6시 근무'에서 벗어나 일이 많을 땐 자유롭게 초과근무를 하고 적을 땐 재충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일정 소득 수준 이상인 화이트칼라 노동자에는 자연스럽게 연봉제를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가 이날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유럽이나 미국 등은 전문가 그룹의 하루 10시간 이상 초과근로를 경험한 근로자 비중이 각각 40.5%, 64.8%에 달했지만 한국은 8.3%에 그쳤다. 한국의 유급휴가 소진율은 75%로, 싱가포르(95%)나 독일(93%), 영국(93%), 미국(92%) 등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어진 휴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유급휴가 소진율은 75%로, 싱가포르(95%)나 독일(93%), 영국(93%), 미국(92%) 등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휴가 활용 비중도 크게 낮았다. 논문 공저자인 오 팀장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다양한 유연 근로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 활용도는 매우 낮다"며 "2022~2025년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 활용률은 임근근로자의 각각 4.7%, 4.1%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최근 국회에서 '재량근로시간제 등을 활용하면 된다'고 하지만 충분치 않다"며 "한 외국계 금융회사는 52시간 상한제 도입 후 법적 책임 문제 때문에 한국지사 고용을 크게 줄이고 아시아 데스크를 홍콩으로 옮겨가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2022~2025년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 활용률은 임근근로자의 각각 4.7%, 4.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총재는 또 논문을 통해 52시간 상한제 도입의 저소득층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냈다고도 지적했다.1분위 초과근로시간과 초과급여는 각각 15.5%, 15.9% 감소했다. 반면 5분위는 각각 3.0%, 0.1% 감소하는 데 그쳤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1분위와 2분위의의 총 급여는 각각 1.3%, 0.8% 감소했다. 반면 5분위는 1.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주52시간 도입이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 팀장은 "제도 도입 이후 1인당 생산성 증가세는 0.33으로 오히려 기울기가 줄었다"고 말했다.

성과급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성과급 비중이 1%포인트 높아질수록 1인당 부가가치는 2.5%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 팀장은 "법정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줄이는 방식에는 신중해야 한다"며 "주 40시간 자체가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고, 추가적인 일률적 제한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급휴가 소진율을 현재 약 79%에서 95%까지 높이면 연간 근로시간을 약 31시간, 나흘가량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무 특성을 고려한 유연근로제 확대도 대안으로 언급했다. 오 팀장은 "연구개발·정보기술(IT)·금융 등 업무 재량이 크고 성과 중심의 보상체계를 적용할 수 있는 직무에는 ‘성과·자율 중심 근로시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 활용률은 낮은 만큼 제도 개선과 함께 성과에 따른 보상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