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 칼럼] 재정경제부는 완벽히 해체됐다
“우리 경제의 대차대조표가 훼손되는 상황을 방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 8월 재정경제부 내부 게시판은 익명의 글로 들끓었다. 기획예산처가 추진한 미래대응기금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글이 잇따랐다. 초과세수를 국채 상환에 써서 나랏빚을 줄이지 않고 기금에 쌓는 데 대한 반발이었다. 국가재정법의 국채 상환 원칙을 우회하기 위해 ‘추가세수’라는 개념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줄을 이었다. ‘미래소멸기금’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당시 구윤철 경제부총리를 향한 호소였지만 그가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예산·기금과 중장기 재정운용은 이미 예산처로 넘어갔다. 재경부에는 세제·국고·국채·외환이 남았다. 세금을 걷고 빚을 내는 부처와 나랏돈의 씀씀이를 결정하는 장관이 달라졌다.

불과 한 달여 뒤 국채시장에서 청구서가 날아왔다. 고유가와 글로벌 긴축 속에 국고채 30년 만기 금리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형일 신임 경제부총리가 취임 후 처음 소집한 F4 회의는 ‘달라진 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 자리에는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빠지고 박홍근 예산처 장관이 앉았다. 회의 명칭도 ‘확대 거시재정금융간담회’였다.

정부는 63조원에 달하는 초과세수를 활용해 국채 발행을 줄이고 필요하면 긴급 바이백에 나서기로 했다. 세수 활용과 국채 발행 축소를 함께 논의하려면 재경부와 예산처 수장이 한 테이블에 앉아야 했다. 달라진 체제에서 대한민국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자처한 사람은 박 장관이다. 그는 초과세수를 미래 투자의 종잣돈으로 본다. 반면 재경부의 우선순위는 나랏빚 관리다.

문제는 투자와 부채를 따로 판단할 수 있느냐다. 영국의 재정 위기는 반면교사다. 1976년 파운드화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영국에 구원투수가 된 것은 북해유전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국가부채는 3조파운드, 국내총생산(GDP)의 94%에 육박한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6%를 넘어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호황기에 들어온 돈은 사라져도 한번 늘어난 지출과 부채는 남는다.

한국에도 북해유전에 비견할 재정의 행운이 찾아왔다. 반도체 호황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수 호황을 영구적인 수입처럼 여겨선 곤란하다.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조차 “호황기 세수에는 강한 ‘중력’이 있다”고 했다. “돈이 생기면 쓸 곳이 만들어진다. 예산은 톱니바퀴와 같아서 한번 올라간 칸은 다시 내려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미래대응기금이라는 ‘완충 장치’의 필요성을 옹호하기 위한 지적이지만, 재정의 하방경직성을 제대로 짚었다.

재정학이 경계하는 ‘공유지의 비극’도 다르지 않다. 재정 의사결정의 분산은 적자 편향을 만든다. 지출의 편익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이 챙기고 비용은 전체 납세자에게 넘긴다. 예산과 세입 기능을 나누는 것이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재경부와 예산처가 한 몸이던 2021~2022년에도 초과세수는 잇단 추가경정예산으로 대부분 사라졌다.

기획재정부 개편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경제정책과 예산권이 한 부처에 집중됐다는 이유에서다. 기재부가 ‘왕 노릇’을 한다는 지적에도 공감했다. 집권 뒤 재정의 양 날개인 세입과 세출을 서로 다른 장관에게 맡겼다.

다시 ‘공룡’ 기재부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핵심은 분리된 의사결정을 누가 재정총량 안에서 다시 묶느냐다. 성장과 건전성을 한 장의 국가 대차대조표에 올려놓고 결정할 주체가 누구인지를 묻는 의사결정 구조가 본질이다. 이형일 부총리는 경제팀 수장으로서 부처를 조율하고 결과에 책임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예산권이 기획예산처로 떨어져 나간 지금 그 책임을 온전히 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산은 기획처가 짜고 국채는 재경부가 발행하더라도 세입과 세출, 자산과 부채를 한 장의 대차대조표에 올려놓고 판단할 주체는 있어야 한다. 정치 우위에 흔들리지 않도록 재정준칙이라는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재경부는 완벽히 해체됐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대한민국의 전체 대차대조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반도체 호황이 끝날 때 우리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