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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먹던 맛이 아닌데?"…태국 여행서 깜짝 놀란 이유 [신예희의 나홀로 한입여행]
망고 찹쌀밥 호, 불호? 나는 호!
하여튼, 이 차원 달라 병의 원조는 뭐니 뭐니 해도 이거다. ‘동남아시아 과일은 차원이 달라.’ 오만가지 수입 과일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현지에서 먹는 맛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 나 역시 이 소리를 하도 달고 다닌 탓에 주위 사람들에게 핀잔도 꽤 들었다. 하지만 정말 다르니 어쩔 수 없다. 용서하시라.
26년 전, 처음으로 방콕을 여행할 때 먹었던 바나나가 시작이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세세한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첫입에 화들짝 놀랐던 감정만큼은 생생하다. 나의 첫 혼자 여행이었는데, 잔뜩 긴장해선 되도록 익숙한 것만 찾아다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묵으며 한국인 여행자들과만 대화했고, 낯선 태국 음식은 엄두가 나지 않아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만 갔다. 과일 역시 익숙한 것 아니면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나마 바나나라서 사 먹은 거다. 그런데 이럴 수가, 맛이 너무 달랐다. 내가 알던 그 바나나 맞아? 오늘의 내가 처음 보는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사람이 된 건, 이런 크고 작은 충격이 오랫동안 하나둘 쌓인 결과일 것이다.
태국 내에서 유통되는 바나나 품종만 해도 30여 가지가 되니 자칫하면 다른 걸 사기 쉽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국산 과일의 품종을 꼼꼼히 따지곤 한다. 캠벨과 샤인머스캣, 거봉 포도의 맛이 천지 차이고, 홍로와 부사, 감홍 사과 역시 달라도 너무 다르다. 수입 과일은 아직 선택지가 부족해서 고르고 따지지 못할 뿐.
한번은 여섯 종류의 망고를 사다가 숙소 식탁에 늘어놓고 번갈아 먹어보았다. 단맛 강한 순, 신맛 강한 순으로 정렬도 해보고, 딱딱한 것과 쫀득한 것으로도 나누어 메모도 했다. 혼자서 조금 긴 여행을 할 땐 요런 놀이를 하면 시간이 잘 간다. 어떤 망고에선 생강과 비슷한 알싸한 맛이 나고, 어떤 것에선 유난히 진한 코코넛 풍미가 감돈다.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니 생소한 식재료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쌀로 만든 디저트는 이미 여러 문화권에 널리 퍼져 있다. 10세기경부터 먹기 시작했다는 튀르키예의 라이스 푸딩 슈틀라치(Sütlaç)도 그렇고, 쌀알이 오독오독 씹히는 게 매력인 이탈리아의 젤라토 알 리조(Gelato al riso)도 오랜 전통의 클래식이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내가 무척 사랑하는 우리 전통 음식이 있다. 찹쌀에 꿀이나 설탕을 듬뿍 넣고 간장으로 살짝 간을 한 다음, 밤이나 잣 등의 견과류와 달콤새콤한 대추를 한 줌 넣어 참기름을 휘휘 둘러 익힌 쫀득하고 달콤하고 향기로운 약식 말이다. 망고 찹쌀밥이 너무 낯설게만 느껴질 때 약식의 맛을 떠올리면 거리감이 한층 줄어들 것이다.
태국뿐 아니라 캄보디아와 라오스,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금세 전파되었다니, 이미 수백 년에 걸쳐 맛이 입증된 셈이다. 슈퍼마켓에선 망고 찹쌀밥 맛의 초콜렛과 과자, 요거트, 아이스크림 등을 흔히 살 수 있고, 수많은 디저트 카페에선 망고 찹쌀밥 맛의 케이크와 빙수가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2015년경부터 한국식 빙수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บิงซู라고 쓰고 빙수라고 읽는다).
태국의 찹쌀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길쭉하고 가느다랗다. 밤새 불렸다가 찹쌀밥을 지어서 잠시 식혀두고, 코코넛 크림에 설탕을 넉넉히, 소금은 약간만 섞어서 살살 데워 가며 잘 녹인 걸 밥에다 골고루 부어서 잘 섞으면 밥 완성. 잘 익은 망고를 한입 크기로 썰어서 찹쌀밥과 함께 담고 소스를 곁들인다. 이 소스는 조금 전의 것과는 다른 건데, 코코넛 크림에 소금과 쌀가루를 조금씩 넣어가며 저으면서 데워서 걸쭉하게 만든 거라 짭짤하다. 이 짠 기가 망고의 단맛을 한층 더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코코넛 크림은 잘 익은 코코넛의 하얀 속살을 득득 갈아서 즙을 꾹 짜낸 것인데, 만드는 방법은 코코넛 밀크와 같지만 지방 함량이 1.5배 가량 높고 농도도 진하다. 음식 이름은 망고 찹쌀밥이지만 실은 코코넛 크림이야말로 맛의 핵심이다. 이 진하고 묵직한 향기가 빠진 망고 찹쌀밥은, 말하자면 간장과 참기름이 들어가지 않은 약식과도 같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과일이 맛있어봤자 얼마나 맛있다고,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진지하게 썼다. 심지어 망고 찹쌀밥만을 위해서 방콕행 항공권을 결제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한다. 하긴, 여행에 무슨 대단한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맛있는 음식 하나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