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렉시옹 디’ 컬렉션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14K, 실버, 브라스 등 다양한 소재로 선보인다. 10만 원대~1천만 원대 / 출처. 디디에두보 홈페이지
‘셀렉시옹 디’ 컬렉션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14K, 실버, 브라스 등 다양한 소재로 선보인다. 10만 원대~1천만 원대 / 출처. 디디에두보 홈페이지
순금 3.75g의 가격은 현재 80만 원 선이다. 지난 1월 사상 처음 100만 원을 돌파하고 한때 110만 원대까지 치솟았으나 지금은 숨을 고르는 양상이다. 하지만 주얼리 제품의 가격표 앞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부담은 여전하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금값 상승에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연이은 가격 인상까지 겹쳤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발견하고도 가격을 확인한 뒤 망설이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며 새로운 룰을 만든다. 금값이 오르자, 주얼리의 디자인과 제작 방식, 소재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속을 비워 무게를 줄이면서 존재감은 살리고, 금 함량을 달리해 가격 선택지를 넓힌다. 한때 금보다 비쌌던 플래티넘을 다시 살피고, 실험실에서 탄생한 보석에도 눈을 돌린다. 이 시대 주얼리 시장은 무엇을 아끼고, 무엇에 더 많은 값을 매기고 있을까. ‘주얼리 경제학’의 달라진 셈법을 들여다보자.

할로우, 속은 비우고 볼륨감은 그대로

‘미스 두’ 골드 귀걸이. 할로우 공법으로 속을 비워 360도 입체적인 볼륨감을 구현했다. 70만원대 / 출처. 디디에두보 홈페이지
‘미스 두’ 골드 귀걸이. 할로우 공법으로 속을 비워 360도 입체적인 볼륨감을 구현했다. 70만원대 / 출처. 디디에두보 홈페이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주얼리 제작자가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은 금을 얼마나 쓰느냐다. 할로우(Hollow) 기법은 그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이다. 할로우는 ‘속이 빈’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겉모습의 볼륨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품의 내부를 비워 중량을 대폭 낮추는 제조 공법이다. 볼륨감 있는 체인이나 귀걸이, 뱅글 등에 활용하면 적은 금으로도 대담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

소비자 관점에서 장점은 분명하다. 크기에 비해 가벼워 착용 부담이 덜하고, 같은 크기의 속이 찬 제품보다 금 사용량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비용이 줄어든다. 다만 내부가 비어 있는 구조적 특성상 강한 충격에는 찌그러지거나 형태가 변형될 우려가 있어 보관과 착용 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를 비워내 물리적 한계를 정교한 기술력으로 돌파한 할로우 기법은 이 시대 주얼리 경제학이 낳은 기술적 묘수임이 분명하다.

14K와 10K까지, 금 함량 달리해 넓힌 선택지

‘THE J’ 14K 목걸이. 금 함량을 낮추고 큐빅 지르코나아를 활용해 골드 주얼리의 선택지를 넓혔다. 80만원대 / 출처. 제이에스티나 홈페이지
‘THE J’ 14K 목걸이. 금 함량을 낮추고 큐빅 지르코나아를 활용해 골드 주얼리의 선택지를 넓혔다. 80만원대 / 출처. 제이에스티나 홈페이지
금의 함량을 달리하는 방법도 있다. 금값 상승이 이어지면서 주얼리 시장에서는 순도에 따른 선택지가 더욱 눈에 띈다. 하이엔드 브랜드들은 여전히 18K(금 함량 75%) 골드나 플래티넘 중심의 정통성을 굳건히 고수한다. 반면 패션 주얼리 영역에서는 이미 친숙한 14K(58.5%)에 더해, 금 함량을 낮춘 10K(41.7%) 골드까지 공격적으로 파고들며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금 함량의 다양화는 ‘18K가 언제나 더 좋은 주얼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소비자들 역시 무조건 높은 금 함량만 고집하기보다 예산과 스타일에 맞는 소재를 고르려 한다. 오래 간직할 한 점을 찾는 사람과 매일 편하게 착용할 주얼리를 찾는 사람의 답은 다를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위해 값을 내는지 아는 것, 그것이 금의 순도를 고르는 기준이다.

플래티넘의 지위 변화, 순백색 귀족의 반전

‘센슈얼 플래티넘’ 컬렉션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넘을 결합했다. 100만 원대~300만 원대 / 출처. 디디에두보 홈페이지
‘센슈얼 플래티넘’ 컬렉션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넘을 결합했다. 100만 원대~300만 원대 / 출처. 디디에두보 홈페이지
한때 플래티넘(백금)은 금보다 비싼 귀금속의 대명사였다. 결혼 예물에서도 고급 소재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금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두 금속의 가격 관계가 역전됐다. 현재 순금 3.75g을 살 때 가격이 80만 원 선인 데 비해, 플래티넘은 30만 원대다. 플래티넘이 순금보다 훨씬 저렴해진 셈이다. 물론 금속 시세가 곧 주얼리의 판매가는 아니다. 플래티넘은 금 합금보다 밀도가 높아서 같은 크기로 만들면 더 무거워질 수 있고, 세공 난이도가 높아 품이 든다.

그럼에도 플래티넘만의 매력은 뚜렷하다. 특유의 순백색 덕분에 화이트 골드(금에 다른 금속을 섞어 흰색을 낸 합금)가 흉내 낼 수 없는 플래티넘만의 품격을 보여준다. 견고하면서도 잘 휘어지는 성질을 지녀 특히 대형 스톤을 세팅할 때 신뢰할 수 있는 소재로 꼽힌다. 손에 올렸을 때 묵직한 존재감도 느껴진다. 한때 금보다 높은 몸값으로 사랑받았던 이유다. 이제는 플래티넘이 이제는 금값 고공 시대의 ‘합리적인 선택지’로 떠올랐다. 이 순백색 귀족의 달라진 가격표야말로 주얼리 경제학이 보여주는 반전이다.

랩그로운 루비·에메랄드, 다시 주목받는 합성석의 원조

‘딜라잇’ 18K 목걸이. 랩그로운 루비 또는 랩그로운 에메랄드를 선택할 수 있다. 160만 원대 / 출처. 다이아미 홈페이지
‘딜라잇’ 18K 목걸이. 랩그로운 루비 또는 랩그로운 에메랄드를 선택할 수 있다. 160만 원대 / 출처. 다이아미 홈페이지
최근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대중화되면서 다른 합성석(Synthetic Gem Materials)에도 ‘랩그로운’이라는 이름이 붙어 통용되고 있다. ‘랩그로운 루비’, ‘랩그로운 에메랄드’가 새로운 선택지처럼 주얼리 시장에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 역사를 들여다보면 순서가 거꾸로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갓 입학한 초등학생이라면, 합성 루비와 에메랄드는 할아버지·할머니 세대다. 합성 루비는 19세기 말에 만들어졌고, 상업적으로 생산된 합성 에메랄드는 193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 새로 나온 보석이 아니라 한 세기 넘게 이어져 온 기술이 다시 조명받는 것이다.

오랫동안 '진짜가 아닌 가짜'로 여겨졌지만, 합성 루비와 합성 에메랄드는 천연석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물리적·광학적 특성을 지닌 실험실 생산 보석이다. 천연석보다 낮은 가격대에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금값이 높아질수록 주얼리 한 점의 예산을 금속과 보석에 어떻게 나눠 쓸지의 포트폴리오가 중요해진다. 천연석의 희소성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같은 예산으로 더 크고 선명한 색을 누리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합성석은 후자를 가능하게 한다. 보석의 출처를 정확히 알고 고른다면, 과학자들이 발전시켜 온 이 기술은 오늘의 주얼리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달라진 것은 주얼리의 속과 소재만이 아니다. 일반적인 주얼리 브랜드는 금 시세가 하루하루 변한다고 해서 제품 가격표를 그때마다 바꾸지는 않는다. 일별 금 시세를 확인하고 중량에 따라 값을 매기는 방식은 종로 금은방에서나 익숙한 풍경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 해외의 젊은 주얼리 브랜드들이 이 종로 금은방의 셈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금 80만원 시대 '이렇게' 버텨라…요즘 주얼리 시장 생존법 [민은미의 파인주얼리]
7879의 이미지는 중량과 금속 시세에 따라 판매하는 브랜드의 가격 철학을 보여준다. / 출처. SNS 계정 @7879_london
7879의 이미지는 중량과 금속 시세에 따라 판매하는 브랜드의 가격 철학을 보여준다. / 출처. SNS 계정 @7879_london
영국의 7879는 국제 금속 시세를 반영해 제품 가격을 매일 갱신한다. 캐나다의 비주트리 민티드(Bijouterie Minted)는 ‘오늘의 금 시세로 사는 골드 주얼리(Solid gold jewellery at today’s price)’를 내걸고, 금 중량과 당일 시세에 제작비를 더한 가격을 보여준다. 이제 가격을 매기는 방식 자체가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건네는 제안이 된 것이다.

금값이 올랐다고 아름다움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 속을 비워 존재감을 살릴지, 금 함량과 금속의 종류를 달리할지, 보석의 출처를 따져볼지 선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돈을 적게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에 값을 치르는지 아는 것이다. 달라진 ‘주얼리 경제학’을 이해한다면, 취향에 맞는 한 점을 더 스마트하게 고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