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추석 과일 세트가 뭐라고"…못받은 대기업 기간제들 '분통'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명절 선물도 '비정규직 차별금지' 대상
대기업 A사, 정규직만 과일세트 줘
중노위 “단기기간제 차별” 판정…결국 소송전
법원 "동종업무하는데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은 불법"
대기업 A사, 정규직만 과일세트 줘
중노위 “단기기간제 차별” 판정…결국 소송전
법원 "동종업무하는데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은 불법"
2014년 방영된 드라마 '미생'에는 계약직 사원 장그래가 명절 선물을 받아 드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팀 정규직 동료들이 햄 선물세트를 받을 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식용유 세트였다.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해도 명절 선물 상자부터 다른 이 장면은 방영 당시 비정규직의 서러움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회자됐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드라마 속 '식용유 세트'는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한 대기업 A사에서는 추석 선물이 논란이 됐다. 이 회사는 지난해 추석 정규직과 파견직 근로자에게 10만원 상당의 과일 선물세트를 지급했지만 직접 고용한 단기 기간제 근로자는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동위원회는 이를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라고 판단했다. 회사는 이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중노위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 측은 문제가 된 근로자에게는 이미 명절 선물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 기간제법, 복리후생성 물품도 차별 금지 명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차별 금지 대상도 구체적이다. 근로기준법상 임금뿐 아니라 '정기상여금, 명절상여금 등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 경영성과에 따른 성과급, 그 밖에 근로조건과 복리후생에 관한 사항이 모두 차별 금지 대상이다.
차별 여부를 판단할 때는 ①정규직과 계약직이 비교 가능한 업무를 수행하는지 ②차등 지급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따진다. 동종 유사 업무를 하고 있는데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등 지급하면 '차별'이라는 의미다.
대법원은 업무의 동종·유사성을 판단할 때 계약서나 취업규칙에 적힌 업무가 아니라 근로자가 실제로 하는 업무를 기준으로 삼는다.
'계약직 인턴' 장그래는 사실상 정규직원들과 한 팀에서 같은 업무를 했기 때문에 동종·유사 업무를 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A사 사례에서는 정규직 엔지니어와 단기 계약직이 비교 대상인지가 쟁점이 됐다. 회사는 업무 성격과 난도가 달라 비교 대상이 될 수 없고, 근로계약 체결 당시 명절 선물을 지급하지 않는 데 합의했다는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동위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계약직 근로자가 퇴근하거나 자리를 비운 뒤 정규직 엔지니어가 해당 업무를 수행한 사실 등을 근거로 두 근로자 사이 업무의 본질적인 내용에 차이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 때 합의했다'는 항변도 노동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기간제법의 차별금지 조항은 당사자 합의로 배제할 수 없는 강행규정으로 해석된다. 채용 단계에서 불리한 조건에 동의했다는 사정만으로 차별이 정당화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노동 법조계의 시각이다.
○ 대법 "단시간 근로자 명절상품권 안준 건 차별" 판단
대법원도 비슷한 입장이다(2025다219688). 병원에서 환자 이송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하는 한 회사는 토·일·월요일만 근무하는 단시간근로자에게 전일제와 달리 상여금, 연말성과급, 명절상품권을 주지 않았다. 근로자는 기간제법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회사는 응급실·중환자실 등 전담구역 이송은 전일제 근로자만 맡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전담구역 업무를 하는 전일제 근로자는 일부에 불과하고 인력이 부족할 때는 단시간근로자도 투입됐다는 점을 들어 이들이 동종·유사 업무에 종사한다고 봤다.
특히 명절상품권은 업무 범위나 난도, 업무량에 따라 차등할 성질이 아니라고 봤다. 법원은 "명절상품권은 복리후생적인 목적에 따라 지급되는 것"이라며 "업무의 범위, 난이도, 업무량 등에 따라 차등 지급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봤다. 책임과 업무량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간제 근로자에게 주지 않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는 의미다.
차별적 처우를 받은 기간제·단시간 근로자는 노동위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 노동위는 미지급 금품 지급 등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고, 차별이 고의로 반복된 경우에는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을 명할 수 있다. 확정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1억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앞의 병원 이송업체 사례처럼 법원에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명절 선물은 회사가 직원에게 주는 호의적인 선물이지만, 정기적·계속적으로 지급돼 근로자에게 사실상 하나의 복리후생으로 자리 잡았다면 차별금지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특히 정규직과 기간제 근로자가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단지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면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회사가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