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격 못 맞추면 안방 뺏긴다"…중국산 공습에 '초비상'
반도체 가격 급등의 불똥이 스마트폰·노트북·TV 등 전자제품 부품업계로 튀고 있다. 치솟은 반도체 가격만큼 완제품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제조사들이 관계없는 다른 부품의 납품단가를 낮춰 전체 원가 상승폭을 억제하고 있어서다. 제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저렴한 중국산 부품으로 대체하는 현상도 가속화하고 있다. 반도체발 비용 부담이 다른 부품으로 번지는 ‘칩플레이션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부품에 10~20% 인하 압박…대기업도 못 피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노트북·TV 등 전자제품에 부품을 공급하는 1차 협력사 대부분이 반도체 가격 인상을 이유로 최근 완제품 업체로부터 10~20% 수준의 원가절감을 요구받고 있다. PCB, 카메라모듈, 모터, 안테나, 커넥터, 배터리팩, 힌지, 케이스 등 모든 부품업체가 공통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 메모리 가격은 2025년 초 대비 현재 종류별로 적게는 3배, 많게는 5배 이상까지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스마트폰의 경우 제품내 반도체 원가비중이 10~15% 수준에서 30~40%까지 높아졌다.

부담은 공급망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1차 협력사가 단가 인하를 모두 감당하기는 어려워, 2·3차 협력사에 다시 원가절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스마트폰 협력업체 A사 대표는 “직간접적인 원가 인하 압박이 올들어 강해지고 있다”며 “전자제품 부품사들의 올해·내년 수익률이 동반 급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부품사도 예외가 아니다. 애플·삼성전자·LG전자 등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을 납품하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등도 강한 원가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같은 그룹 안에서도 반도체 가격 상승의 수혜와 비용 부담이 계열사별로 엇갈리면서 이익 배분을 둘러싼 긴장이 커지고 있다. 이청 삼성디스플레이 대표는 지난 7월 “반도체 업체들이 가격을 좀 싸게 공급했으면 좋겠다”면서 “진짜 너무 힘들고, 고객들도 모두 어려워한다”며 공개의견을 표출하기도 했다.

다만 완제품 업체 입장에서도 생존이 달린 문제인만큼 부품 납품단가 인하를 안할 수 없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업체는 브랜드 파워가 강한 애플, 물량공세를 벌이는 중국 업체와 맞붙는다. 중간에 낀 입장에서 반도체 가격 상승분을 소비자가격에 그대로 얹으면 판매량과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 가격 못 맞추면 안방 뺏긴다"…중국산 공습에 '초비상'

◆“中업체는 20~30% 싸다”…못 맞추면 공급망서 밀려나

더 큰 문제는 단가 인하 압박이 중국산 부품 대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업체들은 국내 업체보다 20~30%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삼성전자, LG전자 공급망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완제품 업체들은 이 가격을 국내 부품 협력사와의 협상 기준으로 활용한다. 가격 차이를 제시한뒤 좁히지 못하면 실제 공급선을 중국 업체로 바꾸는 식이다. 부품업체 B사 대표는 “완제품 업체 구매팀에서 ‘중국 업체는 이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데 맞출 수 있느냐’고 묻는다”며 “가격을 못 맞추면 실제 중국 업체로 물량이 넘어가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품업체 C사 대표는 “3년전 만해도 우리 부품 분야에서 완제품 업체에 납품하는 물량 대부분을 한국 업체가 차지했다”며 “올해 들어서는 중국 업체 비중이 60~70%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공급망 변화의 고착화다. 중국 업체가 한 번 품질 인증과 양산 검증을 통과하면 나중에 메모리 가격이 안정돼도 국내 업체가 물량을 되찾는다는 보장이 없다. 국내 중소 부품사는 단가 인하와 공급물량 감소로 수익성이 떨어진다.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 여력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는 다시 중국 업체와의 가격·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칩플레이션이 국내 전자제품 부품 생태계 전반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칩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 국내 부품업체 대부분이 나가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