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생성 이미지
/사진=AI 생성 이미지
K-뷰티의 영역이 피부에서 머리카락으로 넓어지고 있다. 세럼과 앰플을 바르며 피부를 세분화해 관리하던 방식이 두피와 모발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K-뷰티 산업은 오랜 기간 스킨케어와 색조 화장품을 중심축으로 성장해 왔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헤어케어가 새로운 수출 품목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 주요 뷰티 기업들 역시 관련 제품과 연구개발(R&D), 해외 유통망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두발용 제품류, 샴푸·린스 등 헤어제품 수출액은 4억326만달러(한화 약 5445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3.7% 증가했다. 관세청 수출입통계에서도 헤어케어 수출액은 2023년 5억2128만달러(약 7168억원) 수준이었지만, 2024년 6억8162만달러(약 9372억원)로 전년 대비 약 31% 증가한 이후 2026년 상반기에만 4억1210만달러(약 5666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2025년 연간 수출액의 60%를 넘긴 수치다. 이러한 흐름이 하반기까지 지속될 경우 올해 헤어케어 수출액은 사상 처음 1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내 화장품 생산 실적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두발용 제품류가 전체 화장품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8.7%에서 지난해 9.3%로 상승했다.

얼굴에 바르던 세럼, 이제 두피에 바른다


K-헤어케어의 특징은 단순히 한국산 샴푸가 많이 팔리는 데 있지 않다. K-뷰티를 키운 '관리 방식' 자체가 헤어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샴푸·컨디셔너 중심이던 헤어 관리가 스케일러, 앰플, 세럼 등으로 세분화되고, 두피부터 관리해야 건강한 모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접근법이 확산하고 있다.

해외 뷰티업계도 이런 흐름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 패션·뷰티 매체 보그는 올해 K-뷰티 주요 트렌드 중 하나로 '스칼프 케어와 글라스 헤어'를 꼽았다. 한국식 헤어 관리의 기본은 건강한 두피라는 '스칼프 퍼스트' 방식에서 출발해 두피용 샴푸와 트리트먼트, 헤어 에센스와 미스트 등으로 관리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NBC 역시 지난 5월 한국 헤어케어의 특징으로 건강한 두피를 유지하고 손상된 모발을 관리하는 접근법을 들었다.

스킨케어 성분과 제형이 헤어 제품으로 넘어가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엘르는 올해 K-뷰티 트렌드를 전망하면서 PDRN, 엑소좀, 펩타이드 등 피부 관리에 활용되던 소재가 두피와 헤어케어 영역으로 확장될 것으로 내다봤다. 얼굴 피부에서 시작된 K-뷰티의 성분 경쟁이 두피로 이동하는 셈이다.

미국 접수한 한국식 헤어케어


특히 헤어 제품의 성장은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영향력이 확대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경우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수출액이 5306만달러(약 73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64% 증가했다. 올해 헤어케어 수출 증가분의 절반 가까이가 미국에서 창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헤어케어의 미국향 수출이 2026년 상반기 누적 7100만달러(약 976억원)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43% 성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화장품 시장 내 헤어케어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도 약 20%에 달해 카테고리 자체의 시장 규모가 작지 않다는 점도 국내 업체들이 주목하는 대목이다.

국내 중소 브랜드의 해외 유통망도 넓어지고 있다. 아로마티카는 지난 10일부터 미국 대형 유통업체 타겟의 신규 뷰티 매장 '타겟 뷰티 스튜디오' 611개 점포에서 스칼프·헤어케어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타겟 뷰티 스튜디오는 90여개 브랜드의 1600개 이상 제품을 취급하는 신규 뷰티 매장이다. 아로마티카에 따르면 입점한 한국 스칼프·헤어케어 브랜드는 아로마티카가 유일하다.

오프라인 진출에 앞서 온라인에서 판매량은 더 빠르게 늘고 있다. 대표 제품 '로즈마리 루트 인핸서'는 올해 미국 아마존 프라임데이에서 스칼프 트리트먼트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행사 기간 아로마티카의 미국 아마존 매출은 전년 대비 106%, 판매량은 72% 늘었고 신규 고객은 70% 증가했다. 올 상반기에는 미국 백화점 노드스트롬 88개 점포에도 입점했다.

아로마티카는 샴푸뿐 아니라 두피에 직접 사용하는 루트 인핸서와 스칼프 앰플에 이어 PDRN을 활용한 스칼프 세럼까지 내놨다. 헤어에서도 관리 단계를 세분화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전략이다.

LG생건도 美 세포라 424곳…'K-헤어' 매대까지 생겼다


화장품 대기업 가운데서는 LG생활건강의 움직임이 빠르다. 프리미엄 두피케어 브랜드 닥터그루트는 지난 3월 미국 세포라 온라인몰에 입점한 데 이어 5월 핵심 점포 90여곳에서 제품을 먼저 선보였다. 지난달 15일부터는 미국 전역 세포라 오프라인 매장 424곳에서 14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매장에 따라 'K-헤어' 전용 매대에도 제품이 진열됐다.

기존 유통망까지 합치면 접점은 더 넓다. 닥터그루트는 지난해 10월부터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 지역 코스트코 600여개 점포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미국 아마존 매출도 올해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153% 증가했다. 온라인에서 인지도를 확보한 뒤 코스트코와 세포라 등 대형 오프라인 채널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헤어케어가 회사의 북미 사업 확대에도 일부 기여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올해 2분기 북미 매출은 20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 매출 1760억원을 처음 넘어섰다. 다만 북미 전체 실적에는 다른 브랜드와 사업도 포함되는 만큼 이를 닥터그루트만의 성과로 볼 수는 없다. 회사는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닥터그루트의 성장 등을 북미 매출 증가 요인으로 제시했다.

아모레 10년 계획의 중심 '헤어케어'…2030년 '1조 사업' 목표


아모레퍼시픽도 려, 미쟝센, 라보에이치, 롱테이크, 아윤채, 아모스프로페셔널 등 멀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헤어케어를 차세대 글로벌 성장축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BY30' 목표로 미국·중국·일본·브라질 등에서 프리미엄 헤어케어와 두피 관리 사업을 확대하면서 관련 매출 1조원과 글로벌 매출 비중 60% 이상을 제시했다.

이는 스킨케어에 편중됐던 K-뷰티의 해외 포트폴리오를 넓히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35년 그룹 매출 15조원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더마뷰티·클리니컬 스킨케어와 함께 헤어케어를 신규 글로벌 성장축으로 선정했다. 미쟝센 '퍼펙트세럼' 등 기존 제품을 해외 주력 상품으로 키우는 동시에 두피와 모발을 스킨케어처럼 세분화해 관리하는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R&D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모낭의 미세환경이 새로 형성되는 모발의 강도와 품질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익스퍼리멘탈 더마톨로지(Experimental Dermatology)' 9월호에 게재했다. 회사는 글로벌 펩타이드 전문기업 크로다와 함께 개발한 '그로우 펩타이드' 관련 기술을 최근 출시한 려 '루트젠'에 적용했다. 이미 자란 모발을 관리하는 데서 나아가 모발이 형성되는 단계까지 연구 범위를 넓힌 것이다.

'1조 메디큐브'도 헤어로…뷰티 디바이스 기술까지 두피 확장


스킨케어로 급성장한 에이피알도 헤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메디큐브는 지난해 화장품과 에이지알(AGE-R) 뷰티 디바이스를 합쳐 연 매출 1조4000억원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해외 매출이 1조원을 웃돌았다. 에이피알은 올해 초 기존 스킨케어 중심의 메디큐브를 헤어와 바디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와 함께 로즈마리와 PDRN 등을 앞세운 헤어케어 제품군을 선보였다. 스킨케어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인 성분을 헤어 제품으로 확장한 것이다.

에이피알은 화장품을 넘어 뷰티 디바이스 기술의 적용 범위도 두피로 넓히고 있다. 이달에는 에이지알 '부스터 프로 X2'의 에어샷 모드에 적용된 고주파 마이크로포레이션 기술을 활용한 산학 공동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에 따르면 동물 모델 연구에서 해당 기술을 미녹시딜과 병용했을 때 표피·진피 내 약물 침착량이 단독 도포 대비 최대 2.4배로 증가했고 모발 피복률과 길이, 굵기에서도 유의미한 개선이 관찰됐다. 에이피알은 추가 임상 연구를 거쳐 해당 기술을 두피 환경과 모발 건강 관련 기술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스킨케어 성공 공식 통할까…모발 다양성은 과제


K-헤어의 확장에는 넘어야 할 문턱도 있다. 피부보다 인종과 개인별 특성에 따른 모발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직모부터 웨이브, 곱슬, 강한 곱슬까지 모발 형태가 다양한 미국에서는 한국 소비자를 중심으로 개발해 온 제품만으로 시장 전체를 공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품군을 세분화할수록 재고와 유통, 마케팅 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그럼에도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같은 전통 화장품 대기업부터 아로마티카 같은 헤어·두피 전문 브랜드, 스킨케어와 뷰티 디바이스로 성장한 에이피알까지 헤어 시장에 투자를 늘리는 흐름은 공통적이다.

특히 세포라가 닥터그루트를 별도의 'K-헤어' 매대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미국 유통 시장에서 K-뷰티의 범위가 스킨케어를 넘어서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글로벌마켓인사이츠(GMI)의 K-뷰티 관련 보고서는 글로벌 K-뷰티 시장이 2025년 111억달러에서 2035년 212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6.7% 수준이다. 이 가운데 헤어케어 제품군은 같은 기간 7.4%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전체 제품군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꼽혔다.

글로벌 헤어케어 시장 자체가 커지는 것도 국내 업체에는 기회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글로벌 헤어케어 시장 규모가 2025년 1139억달러에서 2032년 2135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때문에 K-헤어케어가 스킨케어의 인기에 기대 단기적으로 판매량을 늘리는 수준을 넘어 독립적인 수출 카테고리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반복 구매를 끌어낼 제품력과 다양한 모발 유형에 대응할 수 있는 제품 포트폴리오에 달렸다는 관측이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