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원안보, 산업정책의 중심에 세워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부터 최근의 중동 전쟁에 이르기까지, 지정학적 갈등은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흔드는 상수가 됐다. 공장 가동과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석유·가스, 핵심광물이 특정 지역에 편중된 탓에 한 나라의 수출 통제나 수송로 차단만으로 자원 빈국의 공급망은 곧바로 흔들린다. 결국 자원안보란 어떤 위기에도 국민 경제와 산업을 멈춰 세우지 않는 국가 생존의 문제다.

에너지전환은 이 같은 취약성을 줄이는 해법이지만, 그 자체로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석유·가스에 대한 의존을 낮추는 대신 전력망과 에너지저장장치, 풍력터빈 등에 들어가는 핵심광물이라는 새로운 의존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과 자원 안보를 산업정책의 중심축으로 삼고, 처음부터 하나의 설계도 위에서 다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도체만 보더라도 애써 대규모 팹과 클러스터를 조성했어도 전력과 용수는 물론 특수가스와 핵심광물, 소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생산이 멈춰 선다. 산업이 곧 에너지이자 자원인 시대가 된 것이다. 싱가포르가 수십 년간 이어온 통상산업부를 에너지통상산업부로 개편하기로 한 것도 해외 자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국가의 절박한 고민을 보여준다.

자원안보의 첫 번째 원칙은 공급망 설계 기준을 효율에서 회복력으로 옮기는 데 둬야 한다. 핵심은 도입 구조의 다변화로, 단순히 수입국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공급국과 유종, 계약 방식, 운송 경로 전반을 넓히는 일이 관건이다. 비축 역시 정부 물량을 넘어 민간 재고까지 아우르는 국가 총 가용재고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핵심 광물 분야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모든 광물 종류를 정부가 책임질 수는 없다. 산업 기여도와 파급력, 대체 가능성을 기준으로 전략 프로젝트를 선별하고 그 분야에는 범국가적 역량을 아낌없이 모아야 한다.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장기·고위험 영역에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과감히 마중물을 대야 하며, 기금 신설도 검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감수하는 위험은 손실이 아니라 안보를 위한 투자다. 책임 추궁에 매달리다 적기를 놓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수요산업은 자원안보의 수혜자를 넘어 공급망 책임 주체로 나서야 한다. 자원의 중장기 수요를 예측해 공유하고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데 드는 비용과 위험을 분담해야 한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해 첫 번째 자원안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자원별·기능별 공급망 안정 방안과 함께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에너지전환을 뒷받침할 정책 방향을 담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계획은 출발점일 뿐이다. 자원안보는 계획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실행으로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