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위기의 독일 제조업과 극우의 부상
독일 자동차기업 아우디가 올해 중국에서 판매하는 전기차에는 오랜 상징인 ‘네 개의 고리’가 없다. 중국 전용 브랜드 ‘AUDI’라는 영문 이름만 달렸다. 플랫폼과 소프트웨어에는 합작사 상하이자동차(SAIC)의 기술이 적용됐다. 폭스바겐은 차량의 신경 설계도인 전자·전기 아키텍처를 샤오펑의 기술로 만든다. 중국에 자동차 제조를 가르친 독일이 전기차 기술을 사서 쓰는 처지가 됐다.

1985년 폭스바겐이 상하이모터쇼에 처음 참가했을 때 안내 책자는 삽시간에 동났고 관람객은 독일산 종이 품질에까지 감탄했다고 한다. 합작공장과 기술 이전으로 성장한 중국 자동차산업은 40년 만에 유럽의 안방을 노린다. 패권의 역전은 기업 손익을 넘어 공장과 일자리, 정치 지형까지 흔들고 있다.

지난해 독일의 대중국 자동차 수출액은 140억유로로 2022년의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25년간 중국 판매 1위이던 폭스바겐은 BYD, 지리차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엔진과 변속기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이 산업 전환의 발목을 잡았다. 자동차가 배터리와 반도체, 소프트웨어가 결합한 ‘바퀴 달린 휴대폰’으로 바뀌는데도 내연기관 기술과 브랜드 충성도가 방어막이 돼 줄 것으로 믿었다.

반면 유럽연합(EU) 승용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올 상반기 9%에 달했다.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45%의 관세를 물리자 관세 10%인 하이브리드카로 우회로를 뚫었다. 2024년 10월 3800대이던 중국산 하이브리드카의 EU 수출은 올해 7월 5만 대로 13배가량으로 늘었다. 충격은 완성차에서 멈추지 않는다. 비싼 에너지와 중국발 공급 과잉에 시달리는 화학, 철강, 기계도 흔들린다.

독일에서는 2019년 이후 일자리 34만 개가 사라졌다. 자동차에서만 약 13만 개가 줄었는데 폭스바겐은 누적 10만 명의 감원을 예고했다. 슈투트가르트와 볼프스부르크에서 감원 수치 발표가 쏟아지는 동안 독일 동부에서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표가 몰렸다. 지난 6일 작센안할트주 선거에서 AfD는 43.8%를 얻었다. 집권 기민당의 득표율은 17.2%에 그쳤다. 투표율 77.8%는 1989년 이후 최고치다. 출구조사에서 AfD 득표율이 가장 높은 층은 청년이 아니라 고용 불안에 노출된 30~59세로 절반을 넘었다. AfD의 5년 전 득표율은 10.4%에 불과했다. 이민 갈등과 물가, 동서독 격차도 작용했지만 제조업 쇠퇴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배제의 정치를 키운 토양임은 분명하다.

AfD의 약진은 전후 80년을 버틴 ‘방화벽’까지 위협한다. 1928년 총선에서 득표율 2.6%이던 나치당은 대공황 이듬해인 1930년 18%, 1932년 37%로 단숨에 원내 1당이 됐다. 과반에 못 미친 히틀러를 통제할 수 있다고 오판한 보수 엘리트는 1933년 1월 그를 총리에 앉혔다. 그 기억 때문에 전후 독일 주류 정당은 극우와 연정을 하지도, 극우 표에 기대지도 않는 ‘브란트마우어(방화벽)’를 지켜왔다. 이 질서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국내총생산의 약 25%로 독일보다 높고 내수시장은 더 작다. 지난해 수출의 24.4%가 반도체일 만큼 쏠림도 심하다. 울산 여수 광양 창원처럼 주력 제조업에 기대는 도시도 많다. 현재의 반도체·자동차·조선산업 경쟁력을 영구적 우위로 착각하면 독일이 처한 상황은 남의 일이 아니다. 반도체 호황이 안긴 초과세수를 낡은 설비 구조조정과 미래 산업 집중 투자, 근로자 재교육, 산업도시의 다음 일자리 확보에 써야 하는 이유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지역이 쇠퇴하고, 중산층의 신뢰가 무너진 자리를 극단의 정치가 밀고 들어온다. 산업정책은 성장정책인 동시에 민주주의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