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어릴 적 흙장난하며 부르던 이 노래가 요즘 많은 서울 구축 아파트 거주자에게 간절한 염원입니다. 서울 아파트 3채 중 1채는 이미 서른 살을 넘겼고, 신축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서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됐습니다. '이슬기의 새집다오'는 복잡한 재건축·재개발의 실타래를 풀고, 우리가 살고 싶은 '내일의 집'을 탐구합니다. 여러분의 '새집' 꿈이 선명해질 수 있도록 투명하고 쉽게 쓰겠습니다. [편집자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복판, 끝이 없는 학원가 불빛을 지나면 1970년대 후반의 낡은 외관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이 서 있다. 겉보기엔 세월의 직격탄을 맞은 노후 상가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좁은 통로를 따라 분식집, 반찬가게, 전집, 칼국숫집, 생선가게 등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평일 낮 시간대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북적인다. 대치동 학원가 학생들의 소울푸드 성지이자, 대치동 엄마들은 물론 명절엔 일대에서 몰려든 손님들 끝없는 대기 줄이 늘어선다. 대한민국 재건축 최대어 중 하나로 꼽히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종합상가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 사진=김범준 기자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 사진=김범준 기자
이 낡은 상가는 최근까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 젊은 세대와 주부들 사이에서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통한다. SNS에서는 은마상가를 일부러 찾아가는 '맛집 투어' 콘텐츠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은마 상가' 관련 콘텐츠를 SNS에 적게는 수만 회에서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독보적인 상권 파워를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핫플레이스의 이면에는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달할 수 있는 이권이 복잡하게 얽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은마아파트 재건축이 사업시행인가를 받으며 본궤도에 이르자 상가 내부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상가에서 장사하는 세입자들이 전면에 나서 '보상'을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은마 상가 관련 각종 SNS 컨텐츠 / 사진=인스타그램 캡쳐
은마 상가 관련 각종 SNS 컨텐츠 / 사진=인스타그램 캡쳐
최근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약 3개월 전 상가 세입자들이 만든 '비상대책위원회'다. 현재 은마상가 내에는 순수 임차인 점포가 약 450개 정도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아무런 보상 없는 퇴거를 거부하며, 최소 10년 전 상가 권리금 수준(약 1억~1억5000만원)의 이주비를 조합과 소유주 측에 요구했다. 일대 부동산에 따르면, 최근 상가의 권리금은 2000~3000만 원, 월세는 점포 하나당 150~180만 원 수준이다.

비대위 핵심 관계자는 "우리 상가 지하에 가보면 알겠지만, 장사가 워낙 잘 돼 하루 매출만 300만원에서 500만원을 훌쩍 넘기는 곳이 비일비재하다"며 "단순한 동네 구멍가게가 아니라 사실상 수십 명의 생계가 달린 거대한 '기업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20년 이상 장사한 상인이 대부분인데, 재건축된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맨몸으로 쫓겨나라는 것은 생존권을 짓밟는 처사"라며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결코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갈등은 단지 세입자와 조합 간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상가 내부 세입자들 사이에서도 극심한 분열이 벌어지고 있다. 비대위는 기존 상가 관리와 운영 등을 도맡아온 '번영회'에 대해 강한 불신을 표출하고 있다.

은마아파트는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며 이미 한 차례 상가 소유주들과 갈등을 겪었다. 2023년 조합 설립 과정에서 상가 소유주들과 아파트 분양권의 기준이 되는 산정 비율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였다. 양측은 상가와 아파트를 동일체로 묶어 재건축을 진행하되 수익과 비용은 따로 계산하는 '상가 독립정산제'에 어렵게 합의했다. 현재 대치역 쪽에 있는 은마상가의 위치는 재건축 이후에도 유지하기로 했다. 조합 설립을 가로막던 가장 큰 장애물을 넘었던 셈이다.
사진=이슬기 기자
사진=이슬기 기자
이후 사업이 진행되고, 이주 시점이 다가오자 이번에는 상가 임차인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다툼이 격화하며 현장에서는 흉흉한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 일부 상가 세입자들이 옥상에 철탑과 망루를 설치하고, 가스통 등 폭발물 반입 계획까지 세우는 등 무력 행사를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다.

다만 비대위 측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옥상에 직접 올라가 보라. 이중삼중으로 잠금장치가 철저하게 돼 있어 우리 같은 임차인들은 접근조차 불가능하다"며 "우리는 그저 생업에 종사하며 대화를 원할 뿐이다. 루머는 비대위를 불법 폭력 세력으로 매도해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명백한 모함"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조합은 극단적인 사태 발생을 막기 위해 상가 조합원들을 모아 '관리단 총회'를 만들고, 직접 상가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조합 측은 "만약 일부 세입자의 계획대로 옥상에 망루와 폭발물이 설치된다면 이를 쉽게 끌어낼 수 없고, 이렇게 되면 상가 조합원님들은 이들의 금전 요구를 모두 다 들어줘야 할 것"이라며 "정당한 권리를 찾아오는 것이 중요하고, 향후 재산상의 손실도 적극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공지했다.
"은마아파트 상가 옥상에…" 재건축 앞두고 퍼진 '괴소문' 정체 [이슬기의 새집다오]
현재로서는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재개발 사업과 달리 민간이 주도하는 재건축 사업에서 상가 임차인에게 영업 손실 보상이나 이사비 지급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조합 측이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이주 관련 비용 지급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원칙론을 고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현실이 법전 위의 활자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법대로' 임차인들의 반발을 억누르고, 강제로 임차인들을 끌어내는 '명도 소송'으로만 일관할 경우, 조합 측에서도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조원의 대출이 얽힌 재건축 사업에서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이주가 몇 달만 지연되더라도 조합원들이 분담해야 할 금융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런 가운데, 조합은 내년 1월부터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GS건설을 통해 세입자들의 전·월세 보증금을 집주인 대신 대위 변제하는 방법을 통해, 일찍 이주해야 하는 세입자들의 이주를 돕겠다는 입장이다. 조합은 오는 12월에 총회를 열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안건을 표결에 부칠 방침이다.

조합 관계자는 "통상 6개월 이내로 주어지는 일반적인 재건축 단지 이주 기간과 비교하면, 우리는 임차인들과 임차 상인들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이례적으로 긴 이주 기간을 보장할 계획"이라며 "시공사를 통한 보증금 대위 변제 시스템까지 도입해,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임차인들을 최대한 배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은마아파트가 한국 재건축 사업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만큼, 이번 갈등 해결 사례가 앞으로의 정비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임차인들에게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고 조합의 의지가 강력한 만큼 이 사업장 역시 '강제집행'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건축 사업에 앞서 사업장을 이전하거나 폐쇄해야 하는 임차인들과 적절한 타협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은마 아파트는 재건축 후 지하 6층~지상 49층, 29개 동, 총 5850가구 규모 단지로 새로 태어날 예정이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