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신 9주 이하를 대상으로 임신중지 약물 '미프진'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기로 하자 천주교와 개신교 등 기독교계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과 생명위원회·생명운동본부와 생명윤리위원회는 16일 '질서 있게 포장된 낙태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단계적 지원을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절차의 정교함은 생명을 앗아가는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제14회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임신 9주 이하를 대상으로 임신중지 약물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도입 초기 2년간은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고, 이후 안전성과 제도 정비 상황 등을 검토해 의사 처방과 약국 조제 방식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제도적 공백이 이어지면서 임신중지 약물이 음성적으로 유통돼 온 만큼 국가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천주교 측은 "임신 9주든, 병원과 약국에서든 이 약물은 자궁 안에 있는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며 "질서 있게 관리되는 낙태는 생명을 앗아가는 일을 국가의 제도 안에 정착시켜 정상적인 절차처럼 여기게 한다"고 주장했다.

임신 9주라는 기준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인간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되며 임신 9주의 태아도 하나의 인간 생명"이라며 "9주라는 기준은 태아를 위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국가의 보호에서 제외할 생명의 범위를 정하는 선"이라고 했다.

병원 내 처방·조제로 시작해 향후 약국 조제로 확대하는 정부 방안에 대해서는 "단계적 도입은 제한이 아니라 확대와 정착의 로드맵"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입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천주교 측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권리를 함께 저울질하는 중대한 문제는 국회에서 깊이 숙고되고 사회적으로 합의돼야 한다"고 했다.

개신교계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교회총연합 등은 임신중지 약물 도입이 태아의 생명권을 훼손할 수 있다며 정부가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법적 절차 없이 제도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주교는 낙태약 접근성 확대 대신 위기 임신 상담과 주거·생계·의료·돌봄, 한부모 가정 및 출산 이후 양육 지원 등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은 낙태약을 확대하는 로드맵이 아니라 위기에 놓인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지원의 로드맵"이라고 강조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