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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도 '전조'가 있다… 서울과 진주, 이북과 병천을 잇는 맛 [김새봄의 미식 스프링노트]
미묘한 다름을 변주로 잇는 결정적 한 끗,
미식의 '공통음 전조'
미식의 '공통음 전조'
잘 짜인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편안하게 흘러가던 선율이 어느 순간 묘하게 다른 공기와 색채로 물드는 찰나를 마주하게 된다. 화성학에서는 이 아름다운 전환을 가리켜 ‘전조’라 부른다. 곡이 시작해 이어가던 조성에서 다른 조성으로 이동해 음악의 분위기와 색채를 바꾸는 것이다. 익숙하게 흘러가던 선율이 어느 순간 다른 빛깔을 띠기 시작하는건데, 전조는 음악에 새로운 긴장과 방향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공통음을 통한 전조(Common-tone Modulation)는 비교적 자주 쓰이는 전조 방식이다. 앞선 조성과 새로운 조성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음을 징검다리 삼아, 다른 조성으로 자연스럽게 건너가는 것이다. 음악은 분명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는데도 그 변화가 억지스럽지 않은 이유는, 두 조성을 이어주는 공통분모인 음 하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식에서도 이런 연결고리를 만날 때가 있다. 의외의 두 가지 맛 또는 요리방식이 하나의 공통점을 통해 맞물려 전환하며 훌륭한 맛의 전개를 만들어낸다.
남강순대국 순대모듬 / ©김새봄
가장 최근 맛의 공통음 전조를 마주한 곳은 신사동 ‘남강순대국’의 순대 한 접시 앞이었다. 이곳의 순대는 피와 찹쌀을 중심으로 채워 묵직하고 녹진한 ‘이북식’에서 출발한다. 혀를 꾸덕하게 감싸는 육향은 분명 이북의 문법인데 씹는 순간부터는 채소를 넉넉히 넣어 수분감있고 섬유질이 느껴지는 ‘병천식’으로 맛의 중심축이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두 스타일을 이어주는 공통음은 선지와 돼지창자라는 순대의 본질이다. 같은 음을 붙잡은 채 문법만 달라졌기에, 입안에서는 이질감보다 하나의 완결된 곡이 들려온다.
[좌] 남강순대국 순대모듬 [우] 남강순대국 순대와 즐기는 피노누아 뒤에는 남준영셰프 / 사진. ©김새봄
여기에 남강순대국에서 최적의 조합으로 밀고 있는 로쉬 벨렌 브루고뉴 피노누아 한 잔을 곁들이면 훌륭한 마리아주가 된다. 남강순대국은 국밥집이라는 구수한 컨셉에 특이하게 와인을 좋은 가격에 곁들일 수 있어 요즘 세대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시켰다. 두 지방의 서로 다른 조리 문법이 순대라는 매개를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한 몸이 되고 피노누아 한잔이 한 곡을 유려하게 완성한다.
진주회관 콩국수 / 사진. ©김새봄
서울 시청 앞 ‘진주회관’은 국내 콩국수 계보의 최정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2년 경남 진주 시장통에서 ‘삼호식당’이라는 이름에서 출발했다. 1965년 서울 서소문동으로 자리를 옮긴 후, 지금의 시청 앞에 ‘진주회관’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으며 서울을 대표하는 콩국수로 정착했다. 진주에서 출발한 맛이 서울이라는 무대에서 새로운 삶을 얻은 셈이다.
이곳이 반세기 넘게 사랑받는 이유는 콩국에 대한 집요한 고집 덕분이다. 강원도 일대 농가와 계약 재배한 국내산 황태콩만 고집하고, 콩 맛이 떨어지는 겨울철엔 아예 콩국수를 팔지 않는다. 한여름에는 하루 4,000그릇이 팔려나가지만, 기온에 콩국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 국물을 짜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면을 휘감는 진한 진주회관 콩국 / 사진. ©김새봄
진주회관의 콩국은 진하다 못해 걸쭉하다. 쫄깃한 면발 위에는 어떠한 고명도 올라가지 않고, 면과 콩국이 1대1로 대면한다. 전라도처럼 설탕을 듬뿍 넣어 단맛을 끌어올리거나, 충청도처럼 소금으로 짭조름한 간을 맞추지 않고 주방에서 절묘한 당도와 염도를 계산해 한 그릇을 내놓는다. 그리고 콩국수의 단짝, 김치가 등장하는데 조금 많게 느껴지는 양의 김치가 1인당 1접시씩 서빙된다.
진주회관 김치 / 사진. ©김새봄
바로 이 지점에서 진주회관만의 ‘공통음 전조(Common-tone modulation)’가 발생한다. 콩국의 걸쭉한 질감이 입안을 꽉 채워 자칫 무겁게 가라앉으려는 찰나, 100% 국내산 재료로 담근 달큰 깔끔한 서울식 김치가 등장한다. 투박하고 본래의 조성인 진한 진주의 맛과 새로운 조성인 아삭하고 경쾌한 서울의 맛으로의 전환을 담당하는 셈이다. 공통음은 콩국과 김치에 스며든 '은은한 단짠맛'이다.
주방에서 미리 맞춰낸 콩국의 절묘한 단맛과 감칠맛이 혀끝에 머물러 있는 동안, 진주회관 김치 특유의 화사한 당도와 염도가 그 음표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며 또다른 장조(Major)로 도약한다. 묵직하게 진중했던 진주의 콩국수는 김치라는 새로운 문법을 만나 세련된 서울의 미식으로 전조된다. 조금 많다고 생각했던 콩국수도, 1인1접시 김치도 모두에게서 동이 난다. 종지까지 완벽하다.
한국식 찬과 베트남 오리가 한 자리에 올라간다 / 사진. ©김새봄
온빛(ONVIT)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미식 문화를 잇는 현대 한식 파인 다이닝이다. 지준혁 셰프는 장, 참기름, 발효 등 한국의 조리 언어를 바탕으로 베트남의 제철 채소와 허브, 해산물, 쌀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한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2025년 문을 열었는데 1년 만에 미쉐린가이드 베트남 1스타를 획득하며, 베트남 최초의 미쉐린 스타 현대 한식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알렸다.
온빛-전복죽 / 사진. ©김새봄
전복죽은 온빛의 공통음 전조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요리다. 베트남 속짱(Sóc Trăng)에서 개발된 프리미엄 향미쌀 ST25는 판단(Pandan) 잎을 닮은 은은한 향을 품고 있는데, 이 향이 한국 전복죽의 깊은 게우 소스와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베트남 바다의 향을 품은 바다포도, 해초들 아래로 파고든다. ST25 특유의 향과 또렷한 쌀알로 시작해 전복 내장의 진한 감칠맛과 달큰하고 야들하게 삶아진 전복을 만나 어느새 한국의 풍토로 전조된다.
온빛-메인요리 / 사진. ©김새봄
메인 반상은 공통음 전조의 마지막 악장처럼 펼쳐진다. 한쪽에는 베트남 호아락(Hòa Lạc)에서 기른 머스코비 오리가 오른다. 지방은 절제되고 소고기처럼 붉은 육색과 치밀한 결을 지닌 이 오리는 깊은 육향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곁에는 한우가 나란히 놓이며 두 나라를 대표하는 고기가 하나의 단상 위에서 마주한다. 서로 다른 풍토에서 태어난 식재료들이 마지막에 잘 만든 전통 솥밥과 매생이 뭇국, 장아찌와 나물, 젓갈, 쌈채소를 더한 한식 반상의 형태로 귀결되는 것이다. 온빛은 식재료의 국적이 아니라 식문화의 연결로 공통음 전조를 완성했다.
그중에서도 공통음을 통한 전조(Common-tone Modulation)는 비교적 자주 쓰이는 전조 방식이다. 앞선 조성과 새로운 조성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음을 징검다리 삼아, 다른 조성으로 자연스럽게 건너가는 것이다. 음악은 분명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는데도 그 변화가 억지스럽지 않은 이유는, 두 조성을 이어주는 공통분모인 음 하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식에서도 이런 연결고리를 만날 때가 있다. 의외의 두 가지 맛 또는 요리방식이 하나의 공통점을 통해 맞물려 전환하며 훌륭한 맛의 전개를 만들어낸다.
이북과 병천을 잇는 선지, 신사동 '남강순대국'
진주의 콩국과 서울의 김치를 잇는 하나의 음표, 시청 '진주회관'
이곳이 반세기 넘게 사랑받는 이유는 콩국에 대한 집요한 고집 덕분이다. 강원도 일대 농가와 계약 재배한 국내산 황태콩만 고집하고, 콩 맛이 떨어지는 겨울철엔 아예 콩국수를 팔지 않는다. 한여름에는 하루 4,000그릇이 팔려나가지만, 기온에 콩국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 국물을 짜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방에서 미리 맞춰낸 콩국의 절묘한 단맛과 감칠맛이 혀끝에 머물러 있는 동안, 진주회관 김치 특유의 화사한 당도와 염도가 그 음표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며 또다른 장조(Major)로 도약한다. 묵직하게 진중했던 진주의 콩국수는 김치라는 새로운 문법을 만나 세련된 서울의 미식으로 전조된다. 조금 많다고 생각했던 콩국수도, 1인1접시 김치도 모두에게서 동이 난다. 종지까지 완벽하다.
베트남의 풍토로 연주하는 한식의 화성, 하노이 '온빛(ONV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