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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화장품' 2.7조…'유명하면 뭐하나' 국민 비누 굴욕 [고은이의 산업 레이더]
고은이의 산업 레이더
콜게이트, 대중 브랜드 매각 검토
의사 화장품은 몸값 20억달러 거론
효능·사용 습관에 ‘프리미엄’
콜게이트, 대중 브랜드 매각 검토
의사 화장품은 몸값 20억달러 거론
효능·사용 습관에 ‘프리미엄’
모두 화장품·생활용품 브랜드지만 자본이 붙인 꼬리표는 달랐습니다. 누구나 아는 비누와 데오도란트에는 ‘정리할 자산’이라는 평가가 붙었습니다. 반대로 피부과에서 판매하는 화장품과 목욕을 일상의 루틴으로 만든 입욕제에는 각각 20억달러(약 2조7000억원)의 가격표가 거론됐습니다.
콜게이트는 왜 데오도란트를 팔려고 할까
12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소비재 기업 콜게이트팜올리브는 액상비누 브랜드 소프트솝과 고형비누 브랜드 아이리시 스프링, 데오도란트 브랜드 스피드 스틱 등 대중적인 생활용품 브랜드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콜게이트가 당장 자금난에 빠진 기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 분기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9% 늘었습니다. 시가총액도 약 700억달러에 달합니다.노엘 월리스 콜게이트 최고경영자는 최근 바클레이스 소비재 콘퍼런스에서 북미 시장의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며 사업을 원하는 수준으로 돌려놓으려면 '장기간의 정상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잘 알려진 브랜드를 보유하는 것과 그 브랜드에서 성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됐다는 얘기입니다.
콜게이트의 생활용품 사업은 지난해 전체 매출의 17%, 약 35억달러를 차지했습니다. 결코 작은 사업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일부 브랜드를 떼어내려는 것은 치약을 중심으로 한 구강관리와 반려동물 사료 등 경쟁 우위가 분명한 사업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날 붙은 두 개의 ‘20억달러’
콜게이트 매각 소식이 나오기 사흘 전인 지난 8일에는 정반대 성격의 거래 두 건이 동시에 전해졌습니다. 글로벌 사모펀드 블랙스톤은 미국의 의학적 효능을 강조한 스킨케어 브랜드 지오스킨헬스를 약 20억달러에 매각하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지오스킨헬스는 피부과 전문의 제인 오바지가 2007년 설립한 브랜드입니다. 세럼과 토너, 클렌저 등을 일반 마트가 아니라 병·의원과 피부 전문가를 통해 판매합니다.인수 후보들은 지오스킨헬스처럼 임상 근거가 있고 의사 유통망을 갖춘 스킨케어 브랜드를 우선순위에 올리고 있습니다. 효능에 대한 신뢰가 높고 일반 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보다 수요가 안정적이라는 이유입니다.
같은 날 유럽계 사모펀드 CVC도 닥터틸즈를 보유한 생활용품 기업 아르테아의 매각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상 기업가치는 역시 20억달러입니다. 아르테아는 닥터틸즈와 칸투, 바디콜로지 등 헤어·바디케어 브랜드를 80여 개국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오스킨헬스가 ‘전문가가 권하는 관리’를 판다면 닥터틸즈는 ‘하루를 마치는 목욕 습관’을 팝니다. 하나는 임상적 효능을, 다른 하나는 반복되는 사용 장면을 장악했습니다. 공통점은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비누와 데오도란트처럼 기능이 표준화된 제품은 브랜드 인지도가 높더라도 가격과 진열 위치, 할인 경쟁에 더 쉽게 노출됩니다. 자체브랜드나 저가 제품으로 바꾸기도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부진한 브랜드도 ‘고칠 이유’ 있으면 산다
최근 매각 압박을 받고 있는 배스앤드바디웍스는 또 다른 사례입니다. 행동주의 펀드 베어링턴캐피털은 이 회사 지분을 확보한 뒤 매각 검토를 요구했습니다. 배스앤드바디웍스는 미국 쇼핑몰 방문객 감소와 소비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연간 매출 감소 전망치를 2.5~4.5%로 제시하고 상품 수도 10% 줄였습니다.그런데도 베어링턴은 “이 회사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시장 지위와 브랜드 파워, 현금 창출력을 고려하면 사모펀드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성장이 둔화했더라도 소비자에게 분명한 이미지와 사용 경험을 남긴 브랜드라면 비용을 줄이고 경영을 바꿔 되살릴 여지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결국 인수자들이 원하는 것은 두 종류입니다. 이미 성장하고 있는 브랜드이거나, 고치면 다시 성장할 이유가 있는 브랜드입니다. 이름은 유명하지만 소비자가 계속 선택할 이유가 약해진 브랜드는 그 사이에서 밀려납니다.
뷰티 투자시장의 숫자도 이런 선별을 보여줍니다. 뷰티매터에 따르면 올 2분기 뷰티·웰니스 분야 투자 거래는 73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21.9% 증가했습니다. 특히 성장 단계 지분 투자는 51건으로 82.1%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경영권 인수합병은 22건으로 26.7% 감소했습니다. 뷰티산업에 들어오는 돈은 늘었지만 회사를 통째로 사는 데는 훨씬 까다로워졌다는 뜻입니다.
K뷰티, 많이 파는 것 다음이 필요하다
이런 자본의 최근 취향은 K뷰티에 유리합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이 찾는 ‘효능을 설명하기 쉽고 해외에서 확장할 수 있는 전문 브랜드’가 K뷰티의 강점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로레알이 인수한 닥터지도 피부과 전문의가 설립한 더마 화장품입니다. 로레알은 효능과 과학적 혁신, 아시아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인수 배경으로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의사 화장품’을 로레알의 글로벌 유통망에 올리겠다는 계산입니다.
과거 뷰티 M&A의 핵심 질문이 “얼마나 빨리 성장했나”였다면 앞으로는 “광고를 멈춰도 소비자가 다시 찾는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제품 판매량은 마케팅 비용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만 소비자의 습관은 돈만으로 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