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술·금융·외교 결합해야…해외건설 새 게임의 법칙
인프라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 발전소와 도로, 항만이 산업화 시대 성장을 떠받쳤다면 이제는 데이터센터, 전력망, 통신망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인공지능(AI)의 확산은 전력·냉각설비와 부지, 통신망 수요를 키운다. 디지털의 진보가 물리적 인프라 수요를 늘리며 해외건설 시장의 무게중심을 바꾸고 있다.

AI는 설계 최적화와 공정·원가 예측, 현장 안전관리, 디지털 트윈 기반 운영까지 건설의 생산방식을 바꾸고 있다. 발주자의 평가 기준도 시공 실적과 가격을 넘어 데이터를 활용해 위험을 예측하고 생애주기 성과를 높이는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해외건설은 중동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성장하며 경험과 신뢰를 축적해왔다. 그러나 특정 지역 집중은 유가와 재정 여건, 지정학 변수에 수주 실적이 노출되는 구조를 낳았다. 시장 다변화는 필수 전략이다.

문제는 진입 장벽이다. 중남미와 아프리카는 제도와 금융환경, 사업 관행이 다르고 기존 사업자 네트워크도 견고하다. 기술과 가격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정부와 금융회사, 공공기관이 함께하는 국가 차원의 지원과 협력이 중요하다.

경쟁의 단위가 기업을 넘어섰다는 점도 분명하다. 수십억달러 규모 인프라 사업은 시공 이전에 기획·금융·제도·외교가 결합한 복합 프로젝트다. 발주처는 시공능력뿐 아니라 사업을 끝까지 책임질 국가와 산업의 뒷받침을 본다. 결국 경쟁력은 산업과 국가의 총합에서 나온다.

국내에서 축적한 기술과 인력, 금융과 제도는 해외 수주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건설산업을 단순 시공업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삶을 떠받치는 ‘운영체제(OS)’로 보고 작동 방식을 재설계해야 한다. 분절된 생산구조와 가격 경쟁, 기술과 금융의 단절을 그대로 둔다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신뢰와 네트워크를 기업의 실제 수주로 연결하는 기반이 필요하다. 오는 15일 ‘AI와 함께 여는 글로벌 인프라 사업 협력’을 주제로 열리는 GICC(글로벌인프라협력콘퍼런스) 2026은 그런 플랫폼이 될 수 있다.

GICC의 가치는 규모가 아니라 발주처 의사결정권자와의 접점, 정부 간 신뢰를 사업 기회로 연결하는 데 있다. 올해 중남미·아프리카 정부와 발주기관 참여 확대도 의미가 크다. 한-중남미 교통 인프라 간담회, 한-아프리카 협력 간담회, 다자개발은행(MDB) 사업 세미나 등이 함께 열린다.

물론 만남 자체가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기업은 ‘무엇을 지을 수 있는가’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제시해야 한다. 공공부문 역시 초기 사업 정보를 발굴·공유하고 정책금융과 민간금융을 연결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GICC도 일회성 교류를 넘어 사업 발굴부터 금융, 수주까지 이어지는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해외건설은 누적 수주 1조달러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이를 넘어서는 것은 더 많은 수주가 아니라 기술·금융·사업개발·외교, 신뢰를 결합하는 역량에 달려 있다. 해외건설의 다음 도약은 우리 건설산업이 새로운 경쟁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