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캐비닛 스타일 한샘 주방 로얄 (1973)
국내 최초 캐비닛 스타일 한샘 주방 로얄 (1973)
요새 주말의 더현대 서울에는 한정판 팝업에 먼저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늘 긴 줄이 늘어선다. 최근의 풍경 같지만, 50년 전 서울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70년대 소공동 미도파백화점에는 입식 부엌이 전시되었고, 아궁이 대신 들어온 이 새로운 부엌을 직접 보고 사려는 사람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의 아파트 보급률이 4%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주부들은 아직 아궁이 앞에 허리를 숙이고 쪼그려 앉아 밥을 지었다. 그러니까 당시 사람들이 백화점까지 가서 보고 온 것은 그저 싱크대가 아니라, 허리를 펴고 서서 요리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인 셈이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좋은 주방은 로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의 로망, 지금의 가성비

주방을 새롭게 바꾸고 싶다면 크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는 LX지인, 한샘, 리바트 같은 대기업 브랜드다. 전국 어디서나 비슷한 품질로 시공되고, 하자가 나면 찾아갈 곳이 분명하 며, 견적과 공정이 표준화되어 있어 실패할 확률이 낮다. 가격도 제법 합리적이다. 하지만 옆집 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방이 된다. 디자인이 엇비슷할뿐더러, 신축 아파트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빌트인 주방 대부분을 바로 이 회사들이 납품하기 때문이다.
50년 전에도 주방은 로망이었다…나만의 키친 만드는 꿀팁 3가지 [전하민의 리빙 아카이브]
평범한 주방이 아닌, 나만의 주방을 갖고 싶다면 스튜디오 브랜드가 대안이 된다. 대표적인 곳이 MMK(Museum of Modern Kitchen)다. 더현대 서울 VIP라운지 등을 설계한 공간 디자이너 박기민이 2021년 시작한 브랜드로, 다채로운 컬러와 조형감을 활용한 감각적인 주방을 선보인 다. LG전자와 손을 잡아 빌트인 가전 인테리어를 전개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이외에도 직접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셰프와 함께 주방을 설계하는 바이빅테이블, 이케아 메토드 주방 위에 석 재 상판과 커스텀 도장을 얹어 완성하는 아르떼 더 키친도 작지만 단단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하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대기가 길다는 점이다.
오늘의집 키친
오늘의집 키친
대기업과 스튜디오 사이의 공백을 공략한 대안도 있다. 아파트멘터리 키친이나 오늘의집 키친 같은 스타트업 기반 브랜드다. 이들은 디자인의 감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공급과 합리적인 가격대를 내세운다. 특히 오늘의집 키친은 자재는 브랜드별 공급 단가로, 인건비는 공정별 표준을 산출한 견적서를 항목 그대로 공개한다. 또한 판교 직영 쇼룸에서 150여 종의 자재를 작은 샘플 칩 크기가 아닌 실제 상판에 가까운 크기로 비교할 수 있다.

주방을 설계할 때 업체를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을 실제로 사용할 집주인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주방에 대한 자신의 뚜렷한 관점이 있어야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업체를 찾기 전에 먼저 고민해야 할 세 가지를 정리했다.

첫 번째 원칙: 구조를 먼저 정하라

주방구조 4가지 2x2
주방구조 4가지 2x2
주방에서 가장 먼저 정할 것은 도어 컬러가 아니라 싱크, 화구, 냉장고 세 점이 그리는 삼각형이다. 이 세 점을 몇 걸음에 오갈 수 있는지가 그 주방에서 요리가 즐거운 일이 될지 노동이 될지를 결정한다.

구조는 크게 네 가지다. 일자형은 벽 하나에 모든 것을 붙이는 가장 단순한 구조다. 공간을 가장 적게 차지하고 비용도 낮지만, 길이가 3미터를 넘기면 세 점 사이의 동선이 길어져 비효율적이다. 원룸과 소형 평형에 적합하다. ㄱ자형은 두 벽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삼각형이 만들어져 동선이 짧고, 남는 쪽에 식탁을 둘 여유가 생긴다. 다만 코너에 손이 닿지 않는 죽은 공간이 생기므로 코너 수납에 신경을 써 야 한다. ㄷ자형은 세 면을 모두 쓰기 때문에 작업면과 수납이 가장 넉넉하다. 요리를 많이 하는 집에 좋지만 폐쇄적이고, 두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기엔 좁아지기 쉽다.

마지막은 아일랜드형이라고도 불리는 대면형이다. 요리하는 사람이 벽이 아니라 거실을 향하게 되니 대화가 가능하고, 아일랜드가 조리대 겸 식탁이 되면서 집의 중심 역할을 한다. 대신 앞뒤로 최소 90센티미터의 통로가 필요해 면적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화구를 아일랜드에 두면 후드와 배관 비용이 크게 뛴다. 그래서 현실적인 절충은 싱크와 화구는 벽에 남기고 아일랜드는 준비대와 식탁으로만 쓰는 것이다. 어떤 구조든 장단점이 분명하기에, 공간 제약과 예산, 취향을 모두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두 번째 원칙: 보일 것과 감출 것을 나눠라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hoho257)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hoho257)
매거진 속 주방이 근사해 보이는 이유는 예쁜 오브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잡다하게 보이는 물건이 적기 때문이다. 주방은 사용할 물건이 가장 많은 공간이다. 그래서 주방 인테리어는 무엇을 감출지 정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냉장고와 오븐, 전자레인지 같은 가전을 키큰장 안에 빌트인으로 넣고, 도어의 색상을 통일시키면 주방 전체가 하나의 씬이 된다. 주방 후드는 요즘 상부장 안에 숨기는 슬라이드형이 많지만, 반대로 조형적인 후드 하나를 일부러 드러내 주방의 오브제로 삼는 방법도 있다.

다만 감출 때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다. 밥솥과 커피 머신이다. 김이 오르는 밥솥이나 커피 머신을 상부장 아래에 두면, 몇 년 안에 장이 망가질 수 있다. 처음부터 앞으로 당겨 쓰는 슬라이드 선반이나 키큰장 안의 가전 서랍으로 빼두는 편이 낫다. 감출 것을 정했다면, 무엇을 보일지도 정해야 한다. 상부장 한 칸을 비우고 오픈 선반으로 바꿔 매일 쓰는 그릇 몇 개와 도마, 올리브오일 병만 두는 식이다. 전부 감추면 상업 공간처럼 차갑고, 전부 보이면 어수선하다. 보이는 것은 적게 유지하되, 대신 그것들은 나의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는 것. 이것이 주방을 꾸미는 요령이다.

세 번째 원칙: 거실과 연결하라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yuudaa)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yuudaa)
주방은 거실과 맞닿아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상판과 도어 컬러는 거실 바닥과 소파 색을 함께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 만약 따뜻한 우드 계열의 거실이라면, 도어는 같은 컬러의 우드나 웜 그레이로, 상판은 무광 화이트나 베이지로 톤을 이어 붙이는 식이다. 상판은 색감도 중요하지만, 사용성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저가 인조대리석은 김치 국물과 강황이 물들고, 세라믹은 단단한 대신 소음이 많이 발생하고 그릇이 깨지기 쉬우며, 스테인리스는 비싸고 스크래치가 남지만 그 흔적을 멋으로 볼 수도 있다. 각 소재의 특징을 명확히 인지하고, 장점뿐만 아니라 내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단점까지 고려하여 선택해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요리하는 사람에게 주방은 사무실이다. 하루 중 가장 오래 서 있는 자리이자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곳이다. 그 공간이 나의 마음에 쏙 든다면 일이 조금은 덜 고되게 느껴지고, 그 여유는 결국 음식과 식탁 위로 전이된다. 주방을 꾸미는 일은 그래서 나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나와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