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기고] 로봇의 다음 승부처, '몸'이 아니라 '현장'이다
황희승 피지컬AI산업협의회장(브레인커머스 대표)
중국의 로봇 산업은 액추에이터·감속기·센서·제어보드 등 핵심 부품의 모듈화와 표준화를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은 필요한 부품과 프로토콜을 가져다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로봇을 만든다. 이 구조의 무서움은 개별 로봇의 완성도보다 '속도'에 있다. 누군가 새로운 것을 만들면 다른 기업이 빠르게 따라붙고, 그 결과가 다시 생태계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현장을 돌아보며 한 가지 역설도 확인했다. 누구나 비슷한 몸을 만들 수 있게 될수록 '몸' 자체는 차별화 요소가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쟁은 이미 그 윗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바로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로봇에게 가르치는 경쟁이다. 로봇의 다음 승부처는 '몸'이 아니라 '현장 지능'이다.
시뮬레이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실제 공장이나 물류센터는 예외의 연속이다. 물건의 위치가 조금 달라지고, 작업 순서가 바뀌고,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동선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로봇의 판단은 흔들린다.
이 때문에 중요한 것은 사람이 움직이는 영상만을 많이 확보하는 일이 아니다. 작업자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지금 이 행동을 선택했는지, 예상과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을 바꾸는지까지 데이터가 되어야 한다. 동작에 판단과 추론이 붙어야 한다.
숙련된 작업자의 노하우도 마찬가지다. 부품의 상태를 확인하고, 다음 공정을 예상하고, 미세한 이상을 감지해 행동을 바꾸는 능력은 지금까지 사람의 '암묵지'로 남아 있었다. 피지컬 AI 시대에는 이 경험을 로봇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 된다.
중국이 더욱 위협적인 이유는 하드웨어를 표준화한 데 그치지 않고 이제 데이터와 '체화형 AI(Embodied AI)'의 표준까지 같은 방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품질과 수집 방식, 학습과 평가 체계까지 산업의 공통 언어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빠르다. 한국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이 상황을 풀어낼 답이 중국보다 더 싸고 많은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전자, 물류, 식품 등 세계적인 산업 현장이 있고 그 안에는 수십년간 축적된 공정 운영 노하우와 수많은 예외에 대응해 온 사람들의 경험이 있다. 이제 이 현장을 로봇의 수요처가 아니라 피지컬 AI를 학습시키는 '지능 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 역시 약 900개의 현장을 운영하며 이 현장들을 AI와 디지털 기술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았다. 좋은 AI나 로봇을 가져오는 것만으로는 현장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범용적으로 설계된 기술이 각각의 공정과 동선, 작업 방식, 수많은 예외까지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을 수는 없다.
결국 로봇과 AI 혁신의 성패는 현장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장을 직접 운영하며 작업을 정의하고, 데이터를 만들고 기술을 적용한 뒤 결과를 다시 운영에 반영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와 운영 노하우가 바로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현장 지능'이다.
이 자산을 산업으로 만들려면 '현장 지능의 표준'이 필요하다. 단순히 데이터의 포맷이나 라벨을 맞추는 일이 아니다. 어떤 작업을 하나의 단위로 정의할 것인지, 상황과 판단과 행동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실패와 예외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학습한 로봇을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공통의 체계가 필요하다.
중국이 로봇의 '몸'을 빠르게 산업화했다면 이제 한국은 우리가 가진 산업 현장을 로봇의 '지능'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음 피지컬 AI 경쟁에서 우리가 쥐어야 할 것은 또 하나의 로봇이 아니라 로봇이 실제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