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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자 들어간 주식은 사지 마라"…같은 회사를 두 번 파는 나라 [현민석의 페어플레이]
韓 중복상장 비율 18%…美 0.05%·日 4%와 큰 격차
물적분할 후 상장, 적은 지분으로 지배력 유지하는 구조
"모회사 지분 50% 이상 유지하도록 공정거래법 손봐야"
물적분할 후 상장, 적은 지분으로 지배력 유지하는 구조
"모회사 지분 50% 이상 유지하도록 공정거래법 손봐야"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런 방식의 상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상장사가 보유한 다른 상장사 지분가치가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중복상장 비율)은 미국이 0.05%, 일본이 4%다(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 지난해 10월 기준). 그런데 한국은 18%다. 이 차이를 만든 것은 기업 문화가 아니라 제도다.
왜 쪼개서 또 상장하는가 — 지배력을 지키는 물적분할
회사를 쪼개 다시 상장하는 데에는 기업 나름의 이유가 있다.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 신사업을 별도 회사로 떼어 상장하면, 그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하려는 자본을 이자 부담 없이 유치할 수 있고 본업과의 위험도 분리할 수 있다. 실제로 다른 나라 기업들도 같은 이유로 회사를 분할한다.그런데 한국만의 사정은 분할의 방식에 있다. 한국 기업이 택하는 물적분할은 떼어 낸 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전부 갖는 방식이다. 그 일부를 상장으로 팔면 남의 돈이 들어오고, 나머지 주식만 쥐고 있어도 지배력은 유지된다.
이와 달리 미국에서는 떼어 낸 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아니라 모회사 '주주들'에게 직접 나눠주는 인적분할, 이른바 스핀오프(spin-off)가 표준이다. 인적분할을 하면 신설회사 지분이 주주들에게 흩어져 지배주주의 지배력도 줄어든다.
물적분할 후 상장은 지배력을 지키면서 남의 돈을 끌어오는 방법이고, 한국에서 유독 이 방식이 많이 쓰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방식의 상장을 규율하는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92개 중 45개가 지주회사 체제이고, 지주회사 체제에서 쪼갠 회사를 어디까지 팔 수 있는지는 공정거래법 제18조가 정한다.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의 지분을, 자회사는 상장 손자회사의 지분을 각각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1999년 지주회사를 허용하면서 둔 최소 요건인데, 뒤집어 읽으면 30%만 남기고 70%는 팔아도 된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 구조는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하나는 총수의 소유와 지배가 어긋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주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 — 소유는 9%, 이익은 100%
그러나 지배력은 자회사에서도 손자회사에서도 100% 그대로다. 30%를 쥔 회사가 아래 회사의 이사회를 구성하고 그 회사는 다시 위 회사가 지배하므로 총수의 뜻이 끝까지 관철되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이달 공개한 주식소유현황에서도 총수일가의 직접 지분은 평균 3.5%에 불과한데 비해 계열사를 통한 내부지분율은 61.4%에 이른다. 자기 돈 3.5%로 61.4%의 의결권을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서 반문이 나올 법하다. 경제적 이익의 9%만 가져간다면 총수에게도 손해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배당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러나 지배력이 있으면 배당을 거치지 않고도 다른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 가령 손자회사가 총수 개인 지분 100%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그 이익은 9%로 희석되지 않고 100% 총수의 것이 된다.
재무학은 이를 '지배권의 사적 이익'이라 부른다. 결국 총수는 지분은 9%로 줄이면서도 이익은 100%에 가깝게 거둔다. 총수 입장에서 소수 지분만 남기는 상장이 남는 장사인 이유다. 그 이익은 결국 나머지 91% 주주의 몫에서 나온 것이다.
두 번째 문제 — 두 번 파는 회사, 두 겹의 피해자
한편 주주 쪽에서는 두 부류의 주주가 피해를 본다. 2022년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이 전형적인 예이다. LG화학 주주들은 배터리 사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지만, 그 사업이 물적분할로 자회사가 되어 따로 상장되면서 그 회사 주식은 단 한 주도 배정받지 못했다. 배터리 회사 주식은 LG화학이라는 법인이 가졌는데, 시장은 자회사 주식을 직접 살 수 있게 되자 모회사 주식을 껍데기처럼 취급했고 LG화학의 주가는 급락했다.공모주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은 냈지만 의결권이 수만 명에게 흩어져 있어 이사회는 모회사가 정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 이사회가 모회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거나 배당을 줄여도 공모주주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한쪽은 갖고 있던 것을 잃었고, 다른 쪽은 산 것을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
쪼개기 상장의 해법 — 상장 금지가 아닌 물적분할 상장의 지분 요건
정부는 지난 3월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7월 세부 기준을 확정했다.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상장하려면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한 모회사 주주총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모회사 이사회에는 주주 보호 의무가, 거래소 심사에는 충실의무 이행 확인이 더해졌다.방향은 옳다. 그러나 절차만으로는 부족하다. 주주총회를 통과한 상장이라면 30%만 남기고 70%를 파는 구조가 그대로 허용되고, 지배력을 지키면서 남의 돈을 끌어오려는 유인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정거래법이 보탤 수 있는 장치가 있다. 물적분할로 신설한 자회사를 상장할 때에는 모회사가 지분 50% 이상을 일정 기간 유지하도록 자회사 지분 요건을 상향하는 것이다. 매각할 수 있는 지분이 70%에서 50%로 줄면 남의 돈으로 지배력을 유지할 유인은 그만큼 약해지고, 소유와 지배의 괴리도 9%가 아니라 25% 수준으로 억제된다.
대기업집단의 절반이 지주회사 체제인 만큼 이 요건 하나로도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고, 기존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경과규정을 두어 일정 기간 적용을 유예하고 신규 상장부터 적용하면 시장의 충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상장 하나가 멈췄다. 그러나 말은 제도가 아니다. 물적분할 후 상장이라는 방식을 그대로 두는 한, 같은 논란은 다른 그룹에서도 되풀이될 것이다. 회사를 두 번 팔면서 주주를 두 번 울리는 상장이 멈출 때, 이니셜을 가려 가며 주식을 고르는 시대도 끝이 날 것이다. 그것이 페어플레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