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프랑스대사관 야외 정원에 자리 잡은 이배와 오토니엘의 작품. /주한프랑스대사관
주한프랑스대사관 야외 정원에 자리 잡은 이배와 오토니엘의 작품. /주한프랑스대사관
나란히 선 태극기와 프랑스 국기 옆으로 이배 작가의 ‘붓질’ 작업이 걸렸다. 녹음이 우거진 야외 정원에는 프랑스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조각이 꽃처럼 피어났다. 특별 2인전 ‘이배–장-미셸 오토니엘: 교차된 시선’이 열리고 있는 서울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모습이다.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양국과 남다른 인연을 지닌 두 작가가 함께했다. 이배는 1990년대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정착한 뒤 30년 넘게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생폴드방스의 매그재단과 파리 기메박물관 등에서 주요 전시를 열었고, 현재 프랑스 남서부 보리외앙루에르그 수도원에서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오토니엘은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을 비롯해 여러 전시를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났다. 현재 부산 수영구 F1963에서는 그의 부산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주한프랑스대사관 내부에 전시 중인 이배 작가의 붓질 작업. /주한프랑스대사관
주한프랑스대사관 내부에 전시 중인 이배 작가의 붓질 작업. /주한프랑스대사관
지난 31일 전시 개막 행사에서 오토니엘은 “한국은 동아시아 진출의 첫발을 떼게 해준 나라이자, 내면의 여정에 새로운 발견을 허락해준 나라”라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이배 역시 “프랑스 파리에서의 지난 30년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배경과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낯선 땅은 두 작가의 작업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이배는 파리에서 값싼 바비큐용 숯을 작업의 재료로 삼으며 자신만의 검은 화면을 만들어갔고, 오토니엘은 한국에서 마주한 연꽃에서 영감을 얻어 ‘Black Lotus’ 연작으로 작업 세계를 확장했다.

서로의 나라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두 작가는 재료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닮았다. 그 중심에는 ‘불’이 있다. 이배는 나무를 태워 만든 숯을, 오토니엘은 모래의 주성분은 고온에서 녹여 만든 유리를 작업의 주요 매개로 삼는다. 불을 거친 재료로 자연과 우주를 이야기한다는 점도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이런 공통점에서 출발했다.
평면의 붓질 작업을 입체화해 브론즈로 굳힌 이배 작가의 조각 작품. /주한프랑스대사관
평면의 붓질 작업을 입체화해 브론즈로 굳힌 이배 작가의 조각 작품. /주한프랑스대사관
굳게 닫혔던 대사관, 예술로 문 열다

이번 전시가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곳만큼 한국과 프랑스의 예술적 교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도 드물기 때문이다. 대사관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사사한 한국 근대건축의 거장 김중업이 설계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20세기 현대건축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곳에서 전시가 열리는 것 자체도 이례적이다. 대사관 내부에서 열리는 사상 첫 전시인 데다, 사전 예약을 거치면 일반 관람객도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전시를 성사시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요한 르 탈렉 주한프랑스대사관 문화교류협력 담당관은 “전시 준비에만 2년이 걸렸다”며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매년 한국과 프랑스 예술가를 한 명씩 선정해 2인전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꽃에서 영감을 얻어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조각에 금박을 입힌 오토니엘의 작품. /주한프랑스대사관
연꽃에서 영감을 얻어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조각에 금박을 입힌 오토니엘의 작품.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과 호흡한 이배·오토니엘

김중업이 완성한 건축과 정원에서 이배와 오토니엘의 작품은 공간과 대화를 나누듯 서로 공명한다. 특히 야외 정원은 주한프랑스 대사관 관계자들이 이번 전시의 핵심 공간으로 꼽은 공간. 오토니엘이 연꽃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금빛 작업과 이배의 브론즈 붓질 조각이 기존에 정원을 지키던 조각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건축과 작품이 호응하는 장면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버선코처럼 하늘을 향해 뻗은 대사관의 지붕에서 시선을 조금만 돌리 이배의 조각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조각이 자리잡은 곳은 건물 옥상의 펜스 바깥쪽. 보안팀의 우려에도 이배 작가가 여러 날 고심한 끝에 택한 자리다.

요한 르 탈렉 담당관은 ”이배 작가는 동양 예술의 조화와 균형을 고려해 전체를 봤을 때 저 자리에 꼭 놓아야 한다고 제안했다“며 ”작가는 김중업 건축가의 영성과 공간이 주는 에너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호흡하며 작품 배치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소개했다.

두 작가는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대며 작품의 위치를 논의했다. 오토니엘 역시 건축과 작품의 조화를 염두에 뒀다. 근무동 앞 목걸이 형태의 ‘Gold Necklace’ 역시 그가 직접 자리를 골랐다. 오토니엘은 “근무동 유리 벽면에 ‘Gold Necklace’와 ‘Gold Lotus’가 한 번에 투영되며 새로운 느낌을 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8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