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형 공간 컨설팅 창업한 대구 사나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들어설 한 대기업 사옥 지하 주차장에는 자율주행차 등을 불러놓고 잠깐 대기할 수 있는 로비가 마련된다. 현재 재건축이 추진 중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에는 학원에 가는 자녀를 내려줄 수 있는 ‘드롭오프 존’을 갖출 예정이다. 모두 제이슨 리 JLP인터내셔널 대표(본명 이종준·사진)가 제시한 ‘미래 공간’의 예시다.

리 대표는 3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공간을 먼저 만들어 놓고 이를 사용할 수요자를 찾는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수요를 미리 발굴해 이에 맞는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JLP인터내셔널은 건축 이전 단계에서 공간 전략을 세우는 컨설팅 회사다. 활용 시나리오와 동선을 설계·기획하는 일을 한다.

리 대표는 대구 계명대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한 뒤 LG백화점(현 GS스퀘어) 창립 멤버로 일하다 199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갔다. 메릴랜드예술대(MICA)를 거쳐 2005년 글로벌 설계사 캘리슨RTKL에 합류해 약 15년간 미국·중국·베트남 프로젝트를 맡았다.

2020년 3월 회사를 창업한 이후 현대건설·삼성물산·대우건설·SK D&D·한국토지신탁 등과 60여 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압구정3구역과 은마아파트 재건축을 비롯해 한남2구역·방배7구역·장위15구역 재개발 사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창업 당시만 해도 돈이 되지 않는 분야라는 이유로 만류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주요 건축 프로젝트에서 필수 단계로 자리 잡고 있다”며 “영미권에서는 설계 전에 공간 활용 방식과 사업성을 검증하는 절차가 제도화돼 있다”고 전했다.

리 대표의 핵심 전략은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공간을 조성한 뒤 공실을 걱정하기보다, 수요를 먼저 파악하고 이에 맞춰 설계하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카드 결제 데이터와 공공데이터를 결합해 상권의 시간대별 매출, 방문객 연령과 거주지 등을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건물 내 동선을 설계한다.

예를 들어 서울 광화문 인근 프라임오피스 ‘센트로폴리스’에서는 당초 무료였던 피트니스·사우나 시설을 호텔 수준으로 리모델링하고 유료로 전환했다. 입주민 반발도 우려했지만 실제 결과는 달랐다. 리 대표는 “적정한 비용을 받고 품질을 높이자 수요가 오히려 늘었다”며 “데이터 분석을 통한 예측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박종필/사진=문경덕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