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국채시장이 각국의 방만한 재정에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주요국에서 국채 투매가 이어지며 장기금리가 폭등하는 ‘시장 발작’이 터져 나왔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4.8%를 넘어 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일본 10년 만기 금리는 1996년 이후 처음으로 연 3%를 넘었다. 영국과 독일의 10년 만기 금리도 각각 2008년,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촉매는 중동이다. 미국과 이란의 교전 재개로 인한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우려 재점화, 중앙은행의 추가 긴축 가능성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인 국채 투매를 이것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시장은 복지 및 연금 비용 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정부 지출과 국가부채에 대해 더 높은 리스크 프리미엄(위험 가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재정 팽창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본이 직면한 딜레마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엔화 약세와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에 달하는 국가부채 때문에 금리 상승은 재정 부담으로 돌아온다. 신임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의 확장재정 우려까지 겹치며 일본 국채 금리는 30년 만의 최고점으로 치솟았다. 급기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까지 일본에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시장에 분명히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가 내년 821조원 규모의 팽창예산을 확정하자 국내 30년 만기 국고채 입찰은 수요 부진을 겪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 금리 상승은 피할 수가 없다”며 재정의 ‘정교한 역할 분담’을 주문했다. 하지만 금리 상승의 충격을 재정 확대로 상쇄하려다간 금리를 다시 올려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신호다.

국채 금리는 정부가 빚을 낼 때 시장이 매기는 가격이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와 대출 금리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기업투자와 가계소비를 압박한다. 정책 효과도 반감할 수밖에 없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재정의 역할은 더 정교하고 선별적이어야 한다. 대외 경고등이 켜진 지금 한국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재정이 위기의 방파제가 아닌 진원지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