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클리프아펠 서울 메종의 외관.ⓒYongjoon Choi
반클리프아펠 서울 메종의 외관.ⓒYongjoon Choi
몇몇 럭셔리 하우스는 스스로를 설명할 때 ‘브랜드’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 에르메스가 대표적인데, 상업적인 뉘앙스를 배제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장인들의 솜씨로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로 ‘메종(Maison, 프랑스어로 집이라는 의미)’를 즐겨 사용한다. 에르메스 뿐 아니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몇몇 브랜드는 자사를 지칭하는 용어로 ‘메종’을 선호한다. 필자에게는 마치 ‘가문’이라는 뉘앙스로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의 공식 명칭으로도 메종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까르띠에 메종 청담 등.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을 펼쳐 놓은 숍을 메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품을 판매하는 숍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백화점 안에 단독으로 입점한 숍, 유명 거리에 위치한 로드 숍, 커다란 숍 안에 들어있는 숍 인 숍, 그리고 브랜드의 제품은 물론 철학과 역사까지 아우르는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다. 청담동의 들어선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까르띠에 메종 청담, 반클리프 아펠 서울 메종, 신세계 더 리저브에 자리한 LV 더 플레이스 서울 등이 대표적이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규모와 콘텐츠 면에서 백화점 내의 숍이나 로드 숍과 비교할 수 없다.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은 물론이고 브랜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 VIP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레스토랑이나 카페, 혹은 갤러리 등도 갖추고 있다. 이곳에 들른 고객들은 제품 쇼핑을 벗어나 브랜드의 역사와 유산에 감탄하고 브랜드가 제공하는 온전한 서비스를 만끽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각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전세계의 엄선된 장소에서만 만나 볼 수 있다.
반클리프아펠 서울 메종의 입구. ⓒYongjoon Choi
반클리프아펠 서울 메종의 입구. ⓒYongjoon Choi
몇 년 전부터 플래그십 스토어에 불고 있는 트렌드의 하나는 고객 편의를 위한 공간을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부쉐론의 파리 방돔 광장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는 맨 위층을 아파트 형태로 만들어 VIP가 묵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파리 리츠 호텔에서 서비스를 운영한다. 뉴욕의 5번가에 자리한 티파니 플래그십 스토어의 맨 위층도 VIP를 위한 레스토랑과 휴식 공간, 레지던스, 상담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뉴욕 한 복판에 한 층을 VIP 만의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럭셔리 브랜드 매출에서 VIP가 갖는 상징성을 그대로 표현한다.
반클리프아펠 서울 메종 3층에 위치한 예술의 정원. 사진 제공 반클리프아펠
반클리프아펠 서울 메종 3층에 위치한 예술의 정원. 사진 제공 반클리프아펠
필자는 수많은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취재했다. 럭셔리 브랜드의 특성상 진출하는 국가와 도시는 다를지라도 내부 인테리어와 제품은 비슷하기에 플래그십 스토어 취재의 묘미를 처음엔 잘 몰랐다. 그런데 취재를 할수록 ‘숍’에도 급이 존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획일적인 제품 구성이나 인테리어가 아닌 각 도시의 특성을 살린 제품과 시설로 확장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지역색을 강화하는 활동은 그 도시의 중요성과 매출과 직결되어 있다.

까르띠에는 브랜드의 역사가 시작된 파리의 뤼 드 라페 매장, 런던 본드 스트리트 매장 그리고 뉴욕의 5번가 매장을 템플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템플(temple)은 플래그십 스토어의 명성을 뛰어 넘어 브랜드의 역사와 유산을 아우르는 일종의 ‘성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2022년에 서울에 오픈한 반클리프 아펠의 서울 메종은 한국의 전통 문화를 메종 곳곳에 배치한 것으로 유명하다. 건물을 감싼 메시 구조 소재의 하나인 녹색 세라믹은 한국의 전통 방식을 준수하며 국내워크숍에서 제작되었다. 총 5개 층의 부티크는 서울을 둘러싼 일곱 개 산의 의미를 담아 구성되었고, 입구와 3층에 자리한 정원은 창립 초기부터 반클리프아펠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온 자연에 경의를 표하여 조성되었다.
에르메스 메종 본드 스트리트의 외관. ⓒValerie-Sadoun
에르메스 메종 본드 스트리트의 외관. ⓒValerie-Sadoun
에르메스는 얼마전 런던의 뉴 본드 스트리트 166번지에 새로운 메종을 오픈했다. 에르메스의 여섯 번째 메종인 메종 본드 스트리트는 총 2000m² 규모로, 1769년에 처음 지어진 건물을 그라운드 층부터 4층까지 총 다섯개의 층에 걸쳐 여섯 개의 빌딩으로 구성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7M의 웅장한 파사드를 지나 메종에 입장하면 장인 정신이 살아있는 제품은 물론이고 500점 이상의 엄선된 예술작품을 선보이며 영국에서 에르메스의 여정을 기념한다.
에르메스 메종 본드 스트리트의 내부. ⓒValerie-Sadoun
에르메스 메종 본드 스트리트의 내부. ⓒValerie-Sadoun
다양한 제품 존 외에 눈에 뜨이는 곳은 3층의 장인들이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4층에는 에밀 에르메스 컬렉션을 위한 프라이빗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공간은 마치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24번지의 에밀 에르메스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이어 루프 톱 라운지는 서로 이어지는 두개의 정원으로 연결되며, 에르메스의 상징인 깃발 든 기수 아르티피시에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가히 에르메스의 작은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이처럼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에게 가장 거대한 규모의 매장이자 고향 같은 곳이다. 플래그십 스토어의 매력을 알아가면서 필자는 플래그십 스토어 취재가 더욱 흥미로워졌고, ‘메종’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이유도 이해하게 되었다. 요즘 리테일 공간의 화두는 ‘제품’이 아니라 ‘콘텐츠’이다. 풍성한 스토리와 유산을 가진 브랜드는 이미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콘텐츠를 마음껏 펼쳐 놓았던 것이다.
에르메스 메종 본드 스트리트 내부의 세련된 구조가 특징인 계단. ⓒValerie-Sadoun
에르메스 메종 본드 스트리트 내부의 세련된 구조가 특징인 계단. ⓒValerie-Sadoun
부쉐론의 방돔 광장 플래그십 스토어는 고풍스러운 계단을 따라 창립자의 사진을 걸어 놓고 라이브러리 등을 통해 마치 대가족의 저택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뉴욕의 티파니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다니엘 아샴의 ‘청동으로 부식된 아를의 비너스’ 작품이,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에는 양혜규의 ‘Sol Le Witt Upside Down’ 작품이 설치되어 지역 작가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브랜드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면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사람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사람을 보다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