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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산중 비박 후 마주한 꿈의 인수봉…평일이 가벼워졌다 [고태강의 빌드업 클라임]
산에서 배운 단단한 삶의 태도⑤
첫 주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온종일 강의실에 앉아 이론 수업을 들으려니 좀이 쑤셨다. 등산에서 체력을 아낄 수 있는 보행법, 꼭 챙겨야 할 간식, 멀티피치 중 올바른 장비 사용법 등 유익한 내용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것은 베테랑 강사님들이 전해준 서늘한 '사고 사례'들이었다. 말끝마다 “이 시스템을 놓쳐서 누가 다쳤고, 손가락이 절단됐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때 이른 납량특집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 한 여성 클라이머는 하강 중 긴 머리카락이 하강기 틈새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허공에서 머리카락을 절반 이상 잘라내고 난 뒤에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는 일화도 들었다. 무심코 어깨에 닿는 중단발 머리를 매만지며 등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교육은 주말 이틀간 이어졌다. 둘째 날인 일요일에는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길을 찾는 ‘독도법(지도정치)’ 실습이 진행됐다. 등산 경험도 많지 않은 내게 등고선이 빽빽한 지도는 암호문처럼 보였다. 조마다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리더를 맡아 앞장서 길을 찾았다. 동기들이 “여기가 능선이네요”, “저 바위로 가야 맞아요”라며 씩씩하게 치고 나갔지만, 정작 내 차례가 됐을 때는 조원들의 의견에 휩쓸리기 바빴다. 등반을 하려면, 강력한 체력뿐 아니라 등반지로 가는 길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눈썰미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백운대에서도 등반을 한다?…제대로 맛본 슬랩의 매운 맛
흔히 북한산 최고봉으로만 알고 있는 백운대에도 등반할 수 있는 코스가 숨어 있었다. 강사님이 선등으로 올라가 정상 확보물(앵커)에 로프를 내렸고, 우리는 위에서 줄이 잡아주는 탑로핑 방식으로 슬랩 등반에 나섰다. 백운대 슬랩 코스는 앞서 경험했던 삼성산보다 2배 이상 높았다.슬랩의 난이도 역시 삼성산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바위 표면은 매끈했고, 발끝으로 디딜 만한 미세한 돌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모인 7개 조에서 비명과 곡소리가 빠짐없이 나왔다. 아찔한 암벽에 공포를 느껴 울먹이며 매달린 사람부터, 눈물은 안 흘리지만 다리는 덜덜 떨고 있는 사람까지 그야말로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동기들의 비명 소리를 뒤덮은 건 강사님들의 잔소리(?)였다. “무릎 펴!”, “엉덩이 집어넣고 마찰력으로 일어서!” 등 등반에 필요한 기술을 외치는 목소리가 산에 가득 울려펴졌다. 손끝 하나 기댈 곳 없는 매끄러운 화강암 위에서 오직 신발 밑창의 마찰력만으로 체중을 지탱해야 했다. 발가락 하나하나가 바위를 디뎌야 비로소 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실내 암장의 큼직한 홀드에 익숙했던 내게 자연 바위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산중 첫 비박, 그리고 ‘코골이 피신 사건’
교육의 마지막 주말, 대망의 졸업 등반을 앞두고 북한산에서 생애 첫 산중 야영(비박)을 진행했다. 초등학교 시절 걸스카우트 캠프 때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자본 이후, 지붕 없는 자연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건 처음이었다.졸업등반 전날에는 이론 교육을 받고, 마지막 시간에 코오롱등산학교 산하 동호회 선배들이 찾아와 각 동호회를 소개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워킹 등산부터 험난한 멀티피치, 겨울철 빙벽 등반과 해외 원정까지 산의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소개를 맡은 각 동호회 대장단 모두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고 눈빛은 열정으로 반짝거렸다.
저녁 7시쯤 모든 일정이 끝나자, 각 조는 모두 북한산 인수 야영장으로 향했다. 야영장은 화장실 뒤편으로 너른 바위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간단하게 타프를 치고, 서둘러 저녁 준비를 했다. 우리 조는 매주 수업이 끝날 때마다 밥을 꼭 먹고 헤어졌을 만큼 모두 먹는 것에 진심이었다. 알탕, 곱창볶음, 라면 등 갖가지 음식을 준비했고, 7개 조 중에서 유일하게 아이스박스까지 챙겨온 조였다.
저녁에 약간의 술을 곁들여 먹고, 마지막으로 강사님이 내려준 핸드드립 커피까지 마시자 혈당스파이크가 왔는지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인에게 빌려온 여름용 침낭에 몸을 파묻었다. 5월의 북한산은 여전히 한기가 가득했다. 침낭에 핫팩을 두 개나 넣고 잤는데도 발이 시려 새벽에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다.
그런데 새벽녘 눈을 떠보니 전날 밤과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분명 잠들기 전엔 내 주변에 동기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는데, 아침에 보니 다들 저 멀리 10걸음 이상 떨어진 위쪽으로 침낭을 옮겨 자고 있었다. 심지어 아침에 화장실을 가는 길에 외딴 너른 바위에 홀로 자고 있는 사람을 봤는데, 알고 보니 우리 조 강사님이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하면서 동기들에게 왜 다들 멀리서 잤느냐고 물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한 동기가 조용히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 속 녹음 파일에서 울려 퍼진 건 다름 아닌 나의 우렁찬 ‘코골이’ 소리였다. 내 코골이에 시달리던 동기들과 강사님이 한밤중에 짐을 싸서 먼 곳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요즘도 가끔 동기들이 “남편분의 청력이 심히 걱정된다”며 유쾌하게 놀릴 정도로, 우리 조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꿈의 인수봉 정상에서 “야호”를 외쳐보다
아침 9시께, 각종 침낭 등 야영 장비는 야영장에 정리해 두고 가벼운 어택 배낭만 멘 채 인수봉 ‘우정B길’로 향했다. 4주간 매주 주말마다 바위를 접한 덕분인지 몰라도, 이제는 바위에 손자리가 눈에 조금씩 들어오는 듯 했다.76기 중 가장 늦게 출발한 탓에 여느 때보다 강사님들은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그 덕분인지 우리 7명은 빠르게 시스템을 구축하고 후등자를 끌어올리는 등 차분하게 등반을 이어갔다.
마침내, 그동안 까마득히 올려다보기만 했던 인수봉 정상에 발을 딛는 순간 가슴 속에서 뜨거운 전율이 차올랐다. 정상은 졸업 등반을 맞이한 여러 등산학교 교육생들과 클라이머들로 북적이며 그야말로 ‘하강 맛집’을 방불케 했다.
등산학교 첫 날, 떨리는 목소리로 “바위 위에서 떨지 않고 등반을 즐기고 싶다”고 밝혔던 나의 포부가 떠올랐다. 그 목표를 향해 단단하게 한 걸음 내디뎠다는 뿌듯함이 온몸을 감쌌다. 백운대를 걸어서 올랐을때,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인수봉 정상에 직접 섰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맞은편 백운대에 개미 떼처럼 가득한 등산객들이 눈에 보이니 참으로 신기하고 묘한 기분이었다.
그 길로 2023년 8월부터 거의 매주 산을 찾고 있다. 장마철이나 너무 추울 때가 아니면 암벽등반에 나섰고, 등산도 자주 다니게 됐다. 주말마다 바위에서 온몸을 녹초로 만드는 나를 보며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묻곤 한다.
하지만 그 치열함이 클라이밍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바위 위에서 나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그것을 한 뼘씩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일상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단단한 내면의 근육을 선물한다.
힘들게 거대한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 탁 트인 세상을 바라보면, 주중에 받던 스트레스나 고민거리들이 한낱 작은 모래알처럼 사소하게 느껴진다. ‘왜 그렇게 별거 아닌 거에 골머리를 썩었을까’ 하는 헛웃음이 나오곤 한다. 산에서 8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며 벽을 타고 내려오면 어느새 쾌적한 사무실이 그립기기까지 할 정도다. 물론, 수요일 오후 정도가 되면, 푸르른 나무들을 볼 수 있는 산이 다시 아른거리기 시작하지만 말이다.
주말의 혹독한 클라이밍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평일의 일상이 한층 더 가벼워졌다. 새로 옮긴 직장에서 특기란에 ‘한계 극복하기’라고 적었다. 거친 자연과 바위에서 인생에 가장 필요한 단단한 자세를 매번 몸소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위가 가르쳐 준 단단한 회복탄력성을 품고, 이번 주말에도 기꺼이 나만의 벽을 마주하러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