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 하디드(Bella Hadid) / 출처. 인스타그램 및 핀터레스트
벨라 하디드(Bella Hadid) / 출처. 인스타그램 및 핀터레스트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달린 지 오래되었다. 주변 산책로나 공원뿐 아니라 도심에서도 카페에서도 달리는 사람들, 달리다가 쉬어가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내가 달리지 않아도 러닝이 일상 속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모 신문사에서 개최하는 마라톤 대회의 경우에는 참가 신청 경쟁률이 100:1에 달했다고 한다. 러닝 크루를 모집한다는 광고나 브랜드의 러닝 시장 경쟁만 봐도 러닝 열풍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신사에 따르면 2020년 40개 미만이던 국내 마라톤 대회는 2025년 430개 이상으로 늘었고, 2025년 트렌드 결산에서 러닝코어를 주요 패션 키워드 중 하나로 꼽으며 러닝화 판매량이 전년 대비 8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러닝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업계의 추정까지 더하면 정말 너도 나도 달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각자의 삶의 패턴에 맞춰 달리고, 달리는 과정을 기록하며 건강한 루틴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SNS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단단하고 건강해 보인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모두 러닝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왜 지금 이렇게 달리기 시작한 것일까. 달리기는 어떻게 가장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 되었을까.

러닝이 힙해진 이유

ⓒpe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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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달리기는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다른 운동에 비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구나 달릴 수 있다. 장비를 사지 않아도 된다. 달릴 몸이 있으면 달릴 수 있다. 또한 달리기는 혼자 할 수 있다. 여럿이 할 수도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나 혼자 어디서라도 달릴 수 있다. 내 의지와 마음으로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장소의 구애도 적다는 것이 달리기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그런데 러닝의 매력을 단순히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최근의 열풍이 지나치게 크다. 사람들이 달리면서 얻는 것은 건강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 달릴 수도 있지만 여럿이 달릴 수도 있다. 여럿이 달리면 달리는 거리도 늘려가고 더 지속적으로 꾸준히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글로벌 운동 기록 플랫폼의 데이터를 보면 러닝 클럽과 운동 커뮤니티의 참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Strava의 2024 Year in Sport 보고서에서 러닝 클럽 참여가 전 세계적으로 5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운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사회적 연결이었고, 응답자의 58%가 운동 그룹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만들었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 오히려 사람을 연결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달리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 러닝 크루에 참여해 함께 달리고, 낯선 러너와 길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혼자 달리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닌 셈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세계

달리기는 또 목표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의 시대와 러닝이 잘 맞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경제도, 일도, 인간관계도, 미래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달리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오늘 몇 km를 달렸는지,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 어제보다 조금 빨라졌는지는 내가 확인할 수 있다. 통제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세계를 만드는 것. 러닝은 그 자체로 꽤 명확한 자기관리의 방법이 된다.

어떤 옷을 입고 달려도 좋지만 이왕이면 가볍게 잘 달릴 수 있는 옷과 신발을 선택하게 된다. 각자의 취향과 안목에 맞춰 나만의 ‘러닝 착장’도 만들어간다. 이런 러닝 과정을 SNS에 기록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유명한 셀럽들의 달리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면서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자기 관리를 위해 달리는 모습’은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여겨진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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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모습 자체도 콘텐츠가 된다. 새벽의 한강을 달리는 모습, 러닝화와 양말, 짧은 팬츠와 바람막이, 러닝을 마친 뒤 마시는 커피까지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달리는 사람의 모습에는 건강하고 부지런하며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사람들에게 자주 노출되고 소비되는 러닝 콘텐츠가 결국 러닝 트렌드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역설도 있다. 러닝은 스마트폰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한 시간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디지털화된 운동이기도 하다. 달리는 동안에는 휴대폰을 들고 무의미하게 스크롤하지 않아도 된다. 손이 자유롭고, 화면을 보지 않고, 오롯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다. 일종의 디지털 단절의 시간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마치면 다시 휴대폰을 꺼낸다. 몇 km를 달렸는지,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기록을 확인하고 달리는 내 모습을 셀카로 찍기도 한다. 그 기록을 SNS에 올린다. 운동으로 디지털 세계를 잠시 떠났다가, 운동의 기록을 디지털 세계에 다시 공유하는 것이다.

하나의 문화가 된 러닝코어

운동이 ‘하고 끝나는 것’에서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으로 변한 것도 지금 러닝 문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운동하고, 기록하고,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기록을 보고 다시 달리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러닝은 몸으로 하는 활동이면서 동시에 데이터를 생산하고 관계를 만드는 활동이 되었다. 또한 다른 러너들이 어떤 룩으로 달리는지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달리는 모습과 그들이 입고 신은 아이템을 보며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운동을 하고, 운동을 보는 것이 소비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운동하는 타인의 모습이 하나의 패션 레퍼런스가 되는 것이다.

이제 달리기는 하나의 운동 종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러닝코어(Running Core)라는 말이 등장했고, 운동을 넘어 하나의 패션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다. 러닝 캡, 선글라스, 쇼츠, 양말, 러닝화, 바람막이, 기능성 티셔츠와 베스트 등 러닝코어를 타이틀로 경쟁하는 패션 업계도 분주하다.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Emily Ratajkowski) / 출처. Vogue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Emily Ratajkowski) / 출처. Vogue
기능성이 오히려 미학이 되었다. 원래 산을 달리기 위해 만들어졌던 기능성 러닝화가 청바지나 재킷과 함께 일상복으로 소비되고, 러닝을 위한 옷이 꼭 달리지 않는 날에도 스타일링의 일부가 된다. 살로몬처럼 아웃도어와 트레일 러닝에서 출발한 브랜드가 패션 시장에서 새로운 취향의 상징으로 소비되는 현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가볍고 경쾌한 룩이라 마치 언제든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착장은 오히려 트렌드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에슬레저룩의 유행은 오래된 이야기지만 특정 운동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달리기는 호불호가 적고 대중적이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운동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러닝코어는 다른 스포츠코어 트렌드보다 대중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최근의 패션에는 특정한 운동이나 활동을 하나의 미적 취향으로 번역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난다. 고프코어, 테니스코어, 발레코어에 이어 러닝코어가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전에는 ‘나는 이런 옷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패션이었다면 이제는 ‘나는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살아간다’는 것을 옷으로 보여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러닝코어를 입는다는 것은 꼭 매일 10km를 달린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달리는 사람의 태도와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운동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부지런하며 가볍게 살아가는 사람의 이미지를 입는 것이다. 특히 러닝화 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예전에는 가방으로 취향을 표현했다면 이제는 어떤 러닝화를 선택하고 신느냐가 취향을 대변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흥미로운 소비의 변화다. 호카, 온, 아식스, 살로몬 같은 브랜드들이 러닝화 시장을 이끌고 있다. 각각의 브랜드가 가진 디자인과 기술, 이미지가 다르고 소비자들은 그 차이를 자신의 취향에 맞춰 선택한다.

어쩌면 과거의 소비가 ‘얼마나 비싼 것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가까웠다면 지금의 소비는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명품 로고를 드러내는 것보다 새로운 러닝화를 신은 모습이 더 세련되고 힙하게 소비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러닝화는 이제 운동을 위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취향을 표현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건강해지기 위해 시작한 러닝이 어느 순간 또 하나의 ‘잘 사는 방식’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몇 km를 달렸는지, 얼마나 빠르게 달렸는지, 어떤 러닝화를 신었는지, 어느 러닝 크루에 속해 있는지까지 보여주며 우리는 또 다른 자기관리의 경쟁을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달리고 싶은 것은 더 건강한 몸일까, 아니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감각일까. 혹은 러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운동일까. 아니면 잘 살아야 한다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된 것일까.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또 달려본다. 새로 산 쇼츠를 입고 러닝화를 신고 달리는 내 발을 찍어본다. 그리고 달리고 난 뒤 내 모습을 피드에 올린다. 디지털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가 다시 디지털 세계의 콘텐츠가 되고,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 취향을 드러내는 소비가 된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푹 빠진 달리기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통제할 수 없는 시대에, 통제할 수 있는 각자의 작은 세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