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신기하게도 튀르키예에서 지내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이 나라에선 이렇게 먹어야 제맛이란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튀르키예 음식으로 세 끼를 챙겨 먹고, 튀르키예 전통식 홍차와 커피를 몇 잔씩 마시고 나니 디저트 역시 튀르키예식으로 먹는 게 제일 잘 어울리는 거다. 평소에 먹던 것보다 훨씬 달고 거한데도 희한하게 입에 착 붙는다. 단순히 단맛에 중독된 거라고만 보긴 어려운 게,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입맛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에선 튀르키예 음식을 먹어야 컨디션이 좋고, 한국에선 한국 음식이 단연 최고다. 이런 것도 신토불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로쿰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론 영화 <나니아 연대기>를 빼놓을 수 없다. 무시무시한 하얀 마녀가 어린 에드먼드에게 형제를 팔아넘기라고 유혹하며 그 대가로 로쿰을 듬뿍 안겨주는 장면 말이다. 에드먼드가 허겁지겁 로쿰을 입에 밀어 넣고 정신없이 먹는 모습이 어찌나 인상적인지,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로쿰에 대한 환상을 품었을 거다.
하지만 정작 그 맛은 우리의 기대를 살포시 배신한다. 산뜻하게 탄력 있는 질감이 아니라 치아에 쩍쩍 들러붙는다. 맛도 아쉽다. 처음 만들어졌을 땐 천연 과즙과 허브 추출물을 썼다지만, 이젠 대부분의 로쿰에 인공 향료와 식용 색소가 들어가 질감도 향기도 별로 유쾌하지 않다. 대량 생산된 로쿰은 되도록 피하고, 전문 베이커리를 찾아가 맛을 보며 고르시길.
역사가 엄청나게 오래되고 의미도 지나치게 거창한 음식은 맛은 정작 그저 그렇기 마련인데, 아슈레는 맛있다. 아주 맛있다. 통밀과 병아리콩 등의 곡물과 건살구, 건무화과, 건포도 등을 물에 잘 불렸다가 설탕을 듬뿍 넣고(역시 듬뿍이다)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끓여 진득하게 만든다. 완성되면 차게 식혔다가 향기로운 시나몬 가루를 톡톡 뿌려 먹는다.
특히 살구의 역할이 중요한데, 상큼한 맛이 단맛을 중화시켜 주는 듯하다. 나는 아슈레의 맛에 홀딱 빠져, 급기야 노아의 방주가 정착한 곳이라는 아라라트산(Ağrı Dağı)에 찾아가기까지 했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23시간가량 달려야 하고, 도착해서도 해발 3000미터 넘게 산을 올라야 하니 두 번은 못 갈 코스다. 그땐 젊었고, 뭘 몰랐고, 무릎이 튼튼했다.
중간중간 다진 견과류를 골고루 술술 뿌려가며 쌓는다. 오스만 제국 시절엔 왕궁의 주방에서든 가정집 주방에서든 직접 반죽을 얇게 밀었다지만, 이젠 마트 냉동식품 코너에서 쉽게 살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제과점도 꽤 많다. 좀 더 비싸고, 좀 더 맛있다.
25년 넘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여행과 음식을 몹시 좋아한다. 마흔 살에 셀프 안식년을 선언하고 떠난 긴 여행을 계기로, 일 년에 한두 차례 혼자 여러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중이다. 책 <여행, 잘 먹겠습니다> 시리즈와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나이 드는 몸 돌보는 법>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