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순간 인체서 벌어지는 일

장마가 끝난 후 말도 안 되는 폭염이 한반도를 달궜다. 지금은 한풀 누그러들었지만, 입추인 8월 7일 서울 기온은 40도를 넘었다.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졌다. 역대급 염천으로 프로야구 경기마저 며칠째 열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태풍이라도 반가울 지경이다. 그러나 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들이 제구가 엉망인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피해 가듯 한반도를 귀신처럼 피해 갔다는 일기예보는 절망감을 더했다.
떠오르는 해가 두렵다 ©나연만
떠오르는 해가 두렵다 ©나연만
모두가 햇볕을 피해 그늘과 에어컨이 켜진 실내로 도피하고 프로야구 선수들조차 글러브와 배트를 내려놓은 더위는 그야말로 재난이다.

202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레리 케니(W. Larry Kenney)교수 연구팀이 응용생리학 저널(Journal of Applied Physi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습도 100%에 기온 31°C, 혹은 습도 60%에 기온 38°C가 되면 인간의 체온조절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온이 오를수록 심장 박동수가 따라 오른다고 경고하는 논문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러닝은 어떤가? 이런 날씨에 하는 러닝은 매우 위험하다.(‘위험할 수 있다’가 아닌 확정적인 위험이다)

폭염 속에서 달리면 우리 몸은 체온을 낮추기 위해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안 그래도 체온을 잡느라 바쁘게 일을 하던 심장은 펌프 속도가 높아지며 더욱 혹독한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 자신이 달리던 거리와 속도를 유지하려다가는 정말 쓰러지는 수가 있다.

마일리지를 포기할 수 없는 자 '3가지 요령'

과학적인 논리로 아무리 경고를 해대도, 일부 러너들은 사서 고생을 하는 어딘가 단단히 미친 사람들이기에 말릴 수가 없다. 게다가 달리기를 좀 하는 사람이라면 다가오는 가을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 한두 개쯤은 이미 예약을 해놨을 터. 에어컨 아래 누워 공들여 만든 신체가 마라톤을 하기 이전으로 초기화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매일 달리면서 일출을 맞는다 ©나연만
매일 달리면서 일출을 맞는다 ©나연만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훈련을 할까. 그들의 요령은 무엇일까. 첫 번째, 하루에서 가장 기온이 낮은 새벽 시간을 노린다.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선생님이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낮은 때가 언제냐”라고 물었을 때, 손을 번쩍 들고 “해 뜨기 직전이요.”라고 대답해 선생님의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너무 기분이 좋았기에 잊혀지질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살면서 선생님께 받은 칭찬은 그것 뿐이기도 하고) 그렇다. 해 뜨기 직전, 가장 기온이 낮은 시간을 활용하는 거다. 어스름한 새벽 다섯 시 정도에 밖에 나와 러닝을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다섯 시 사십 분쯤 동쪽 하늘에서는 스멀스멀 해가 산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일출 후 30분 이내에 훈련을 마친다. 이 시간엔 아무리 더워도 30도씩 올라가진 않는다. 그리고 대지가 태양에 드러나기 전이기에 가벼운 러닝은 가능하다. 그럼에도 훈련 도중에 물이나 이온음료를 자주 마시는 것은 필수다.
5시 47분의 체육공원 ©나연만
5시 47분의 체육공원 ©나연만
두 번째, 물을 챙겨 빌딩 숲 대신 진짜 ‘숲’으로 들어간다. 러너들에게 숲속 훈련의 장점은 많다. 도심의 뜨끈한 아스팔트에 비하면 지열이 올라오지 않을뿐더러, 빽빽한 나무들이 직사광선까지 막아주어 러닝이 한결 수월해진다. 서울에서는 러너들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남산의 북측순환로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서울숲이나 일자산 코스 역시 훌륭한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노면이 고르지 않거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는 점은 숙지해야 한다.
한여름의 서울숲 ©나연만
한여름의 서울숲 ©나연만
세 번째, 실내 트레드밀을 이용한다. 사실 이럴 때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은 헬스클럽에서 트레드밀 위를 달리는 것이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실내야말로 폭염과 태양광선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벙커 아닌가. 바깥 풍경을 볼 수 없어 지루함을 느낀다면 경사도를 조절하거나 트레드밀 자체에 내장된 달리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 같은 경우 액션영화를 보면서 뛰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은 이기는 게 아니다

이 세 가지 방법 중 무엇을 택하든,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 절대 기록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벽을 택하고, 그늘진 산속을 택하고, 안전한 실내를 택해 운동한다 하더라도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그러다 열사병이나 탈수로 쓰러진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다. 몸은 몸대로 상하고, 대회 참가는 못 해서 마음이 상한다.
양재천러너스 이혜영대표와 김정호 선수 ©양재천러너스
양재천러너스 이혜영대표와 김정호 선수 ©양재천러너스
이 맘 때의 훈련은 그저 ‘훈련을 한다’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양재천러너스 이혜영 대표 역시 “여름 훈련은 페이스(속도) 보다는 심박수를, 거리보다는 시간을 훈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속도와 심박수가 과도하게 올라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몸에 부담이 더해져 페이스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가 덧붙인 진리 같은 한마디가 머리에 콕 박힌다.

“자연은 이기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우당탕탕 힘겹게 버틴 여름을, 머리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몸이,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한다. 마침내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대회 출발선을 밟고 지나가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기록적인 폭염을 훈련으로 이겨낸 발걸음이 얼마나 경쾌한지, 내가 얼마나 빨라졌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