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fourdayday)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fourdayday)
2022년, SK하이닉스는 전 직원의 의자를 허먼밀러로 교체했다. 직원수 약 3만 명. 대당 200만 원을 웃도는 의자이니, 단순 계산으로도 수백억 원 규모의 결정이다. 1994년 출시되어 실리 콘밸리 사무실의 상징이 되었던 허먼밀러의 의자는 이제 네이버, 카카오, 우아한형제들과 같은 IT 회사들의 기본적인 복지가 되었다.

기업은 낭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의자에 수백억을 쓰는 것은 철저한 계산의 결과다. 직장인은 하루 최소 8시간 이상을 의자 위에서 보낸다. 어쩌면 매트리스 보다도 더 많은 시간인 것이다. 오래 앉아도 편안한 의자는 일의 품질로 연결되고, 이는 곧 회사의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무실이라는 단어의 범위가 회사 건물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 AI가 일의 풍경을 바꾸는 지금, 평생직장은 옛말이 되었다. 대신 개인이 회사 밖에서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시대가 열렸다.

퇴근 후 앱을 만들어 부수입을 창출하는 기획자, 유료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마케터, 정보성 영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얼굴 없는 유튜버까지, AI를 활용해 새로운 부가 수입을 얻는 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이는 퇴근 후 두세 시간을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좋은 홈오피스가 필요하다. 그 공간을 만드는 세 가지 원칙을 정리해 봤다.

첫 번째 원칙: 일의 영역에 경계를 그어라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에헤엠a)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에헤엠a)
홈 오피스를 꾸리려면 경계를 설정하는 일이 우선이다. 물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집이 아닌 사무 공간으로 인지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침대나 소파에서 일이 잘되지 않는 이유는 뇌가 그 자리를 휴식의 자리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방 하나를 통째로 서재로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작은 변화만으로도 공간을 분리할 수 있다. 책상 아래 러그 한 장을 깔아 바닥의 영역을 나누거나, 책상 근처에 수납장이나 파티션을 두어 시선을 차단시켜 보자. 그것만으로도 뇌는 휴식과 일하는 공간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휴식을 연상 시키는 침대나 TV가 시야에 들어온다면, 책상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좋다.

공간이 아닌 행동으로도 경계를 설정할 수 있다. 팬데믹 시기, 재택근무자들 사이에서 가짜 통근이 유행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과 끝낸 후, 집 밖으로 나가 동네를 한 바퀴 걷고 돌아오는 것이다. 굳이 이동할 필요가 없는데도 걷는 이유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몸에 새기기 위해서였다. 오랜 시간 반복된 출퇴근이란 행위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스위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원칙: 취향보다 기능이 우선이다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곽억배)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곽억배)
홈오피스의 책상과 의자를 고를 때만큼은 취향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책상 앞의 몸은 모니터 를 향해 같은 자세로 몇 시간이고 고정되기 때문이다. 사무실만큼 긴 시간은 아니어도, 하루 두 세 시간 이상씩 반복되는 자세를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

공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모니터의 중앙을 눈높이와 같게 하고, 눈과의 거리는 50~75cm 정도가 적당하다. 키보드에 손을 올렸을 때 팔꿈치의 각도는 90도, 의자에 앉았을 때 발바닥은 바닥에 온전히 닿아야 하고, 허벅지는 지면과 평행을 이룬다. 조건들이 충족되면 몸은 비로소 골고루 하중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몸을 가구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에 맞게 필요한 기구들을 구비해야 한다. 노트북 하나로 일한다면 거치대와 외장 키보드로 화면과 손의 높이를 분리하는 것이 첫걸음이고, 책상 높이가 맞지 않는다면 의자의 높이를 조정하고 발받침을 활용해야 한다.

데스크테리어 예산도 취향보다는 필요가 우선이다. 소리가 좋은 기계식 키보드보다 자세를 잡아 주는 의자와 모니터 암이 먼저다. 몸이 직접 닿는 곳, 그리고 시선이 하루 종일 머무는 곳에 투자하자. 분위기는 그다음에 더해도 늦지 않다.

세 번째 원칙: 빛과 소리를 설계하라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밀키홈)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밀키홈)
책상과 의자가 몸을 위한 설계라면, 마지막 원칙은 몰입의 감각을 위한 설계다. 그리고 여기에 홈오피스의 오래된 미스터리에 대한 힌트가 있다. 왜 집보다 카페에서 일이 잘될까.

의외로 답은 '집이 너무 조용해서'일 수 있다. 일리노이대학교 연구팀은 소음의 크기와 창의적 사고의 관계를 실험했는데, 결과는 직관과 달랐다. 50 데시벨의 조용함 보다 약 70 데시벨, 그 러니까 딱 카페의 웅성거림 수준의 소음에서 참가자들의 창의적 과제 수행 능력이 가장 높았던 것이다. 물론 85 데시벨을 넘어서면 소음은 다시 독이 된다. 너무 조용하지도, 너무 시끄럽지도 않은 적당한 배경음이 사고를 느슨하게 풀어주고, 그 느슨함이 발상의 여지를 만든다. 완벽한 정적을 만들려 애쓰는 대신, 낮게 깔리는 음악이나 백색소음으로 나만의 데시벨을 설계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전에 다루었던 조명 레이어링의 원칙은 홈오피스에서도 유효하다. 전체를 밝히는 기초 조명과 함께 책상 위에 작업 조명을 겹치면,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다만 한 가지를 더한다면, 책상 위의 작업 조명은 홈오피스에서 조명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일을 시작할 때 켜고, 일을 마치면 끄는 업무용 조명을 하나 추가해 보자. 태스크 조명의 스위치는 그 자체로 출근과 퇴근의 의식이 된다.

제2의 책상을 찾아서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sund_home)
사진제공. 오늘의집 유저(sund_home)
퇴근 후의 책상에서 낯선 나를 만날 수 있다. 회사의 일부로서가 아닌,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쓰고 싶었던 글을 쓰고,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고, 언젠가 나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을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은 서툰 취미처럼 보이는 그 작업이 어디까지 자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을 바꾼 많은 것들이 차고와 자취방의 작은 책상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꿈은 거기서 자란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것은 200만 원 짜리 의자가 아니라, 평일 저녁과 주말 낮, 기꺼이 앉고 싶어지는 작은 공간이다.

오늘 밤, 집의 책상 앞에 한번 앉아보자. 독립된 공간으로 인지되는가. 모니터는 눈높이에 있으며 팔꿈치의 각도가 90도인가.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당신은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