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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맛…미각의 고도 제한을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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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셰프 요리 부럽지 않은 '기내식의 진화'
미쉐린 셰프 요리 부럽지 않은 '기내식의 진화'
그만큼 기내식은 오래도록 ‘차갑고 건조한 음식’이라는 그늘 아래 머물러 있었다. 사실 하늘 위는 미식과는 가장 거리가 먼 공간일지도 모른다. 건조한 공기, 낮게 깔리는 기압 그리고 귓가를 울리는 엔진 소음 속에서 미각과 후각은 무뎌지기 때문이다. 땅 위에서 갓 지어낸 따스한 온기를 차가운 상공으로 그대로 옮겨오는 일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내식 트레이에 담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저 허기를 달래는 한 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인류가 하늘을 날기 시작한 이후 기내식은 낯설고 두려운 미지의 공간을 ‘단순한 이동’에서 ‘두근거리는 여행’으로 바꿔주는 작고 따스한 위안이 됐다.
하늘에서 처음 음식을 나눈 건 1919년 가을이었다. 영국 핸들리페이지트랜스포트가 런던에서 파리로 향하는 길목, 불안하게 흔들리는 객실에서 승객들에게 샌드위치와 과일이 담긴 자그마한 도시락을 건넨 게 시작이다. 그로부터 8년 뒤, 프랑스 에어유니언은 랍스터샐러드와 닭고기,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샴페인이 어우러진 정갈한 코스 요리를 선보였다. 찰랑이는 도자기 접시와 묵직한 은빛 커틀러리, 하늘 한가운데서 터지는 샴페인 거품은 날아오르는 행위 자체가 삶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던 시대의 낭만을 담고 있다.
캐비아와 푸아그라를 싣고 스타 셰프를 영입하는 등 항공사들이 어려운 기내 여건을 극복하고 최고 요리를 서비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위트룸, 더블침대, 전담 승무원 서비스 등 비행기가 초호화 호텔 못지않은 서비스로 승객을 끌어들이는 시대. 기내식은 더 이상 허기를 채우는 부가서비스가 아니다.
하늘을 날아 목적지로 향하는 이들에게 ‘지상의 평온한 일상이 여전히 함께한다’는 다정한 안부이자 아득한 구름 너머의 여정을 완성하는 두근거리는 첫 번째 인사다.
명품 식기 쓰고, K푸드 맛집 협업…"기내식은 맛없다?" 편견을 깨다
항공사들 '미식 마케팅' 경쟁
지난달 인천 중구의 한 기내식 업체 회의실. 파라타항공 객실 승무원과 임원 등 10여 명이 장어덮밥을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7월부터 판매할 새 기내식을 정하는 최종 평가 자리였다.
질문을 받자마자 기내식을 개발한 최규덕 셰프가 숟가락으로 장어를 눌렀다.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아도 살이 부드럽게 갈라졌다.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2’에 출연했던 그는 “칼 없이 숟가락만으로 떠먹을 수 있도록 조리한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이 메뉴의 개발진은 장어를 초벌로 조린 뒤 찌고, 전분을 묻혀 튀긴 다음 소스에 다시 졸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조리 공정을 수차례 수정했다. 냉장 보관 후 재가열해도 쪼그라들거나 형태가 무너지지 않으면서 갓 만든 것 같은 맛을 최대한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날 장어덮밥과 막국수 등 5개의 시식 메뉴가 맛, 외관, 가격 적정성 등을 평가받았다. 이날 합격점을 받은 메뉴는 파라타항공 기내에서 판매 중이다.
‘하늘 맛집’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기내식은 단순한 한 끼를 넘어 항공사의 기술력과 서비스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 상품으로 진화 중이다. 항공사들은 유명 셰프와 손잡고 메뉴를 개발하고, 제철 식재료와 취항지의 지역색을 반영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기내식이 목적지의 맛과 문화를 미리 경험하게 하는 ‘여행의 첫 코스’가 된 것이다.
캐비아·명품 식기…하늘 위 파인다이닝
붕어빵·짜글이…LCC는 로컬 메뉴로 승부
저비용항공사(LCC)는 더욱 대중적인 재미를 앞세운다. 이스타항공은 겨울철 꿀호떡과 붕어빵을 판매해 ‘하늘 위 붕세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알마티 노선에는 식물성 대체육 파스타와 할랄 라면을 추가했다. 에어서울은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한 다카마쓰 노선의 특성을 살려 정호영 셰프와 우동·덮밥 메뉴를 개발했다.제주항공은 삼원가든과 소갈비찜·떡갈비 도시락을 만들고 불닭과 채식 메뉴로 K푸드의 범위를 넓혔다. 에어로케이는 충청권 음식인 짜글이와 청주 지역 디저트, 국내 수제맥주를 싣는다. 기내를 취항지와 지역 브랜드를 소개하는 작은 쇼윈도로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기내식은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제공되기 때문에 먹기 불편한 음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기내에 오르면 다소 그 맛이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인 이유도 있다. 순항 중 객실 기압은 해발 약 1800~2400m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지고, 습도는 10~20% 안팎까지 떨어져 사막보다 건조해진다고 한다. 입안과 코가 마르면서 음식의 향을 느끼기 어려워지고, 단맛과 짠맛의 감각도 지상보다 둔해지는 것이다. 특히 기내 소음은 약 85dB로, 귀가 먹먹해져 미각이 제 기능을 하기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내식을 포기하기엔 선택지가 너무 다양해졌다.
“기내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사람은 없다”며 비행 중 식사를 한사코 거부했다던 미식가 앤서니 보데인도 요즘의 기내 메뉴판을 봤다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안혜원/송준영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