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사진=임형택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사진=임형택 기자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강하게 조인 가운데 집주인이 은행 대신 매수인에게 수억원의 자금을 빌려주고 해당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이른바 '매도인 근저당' 거래가 늘어나고 있다.

3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 '파크리오' 전용 59㎡ 매물 가운데는 매수인이 10억원만 준비하면 나머지 매매대금 19억원을 시간을 두고 지급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건 사례가 등장했다. 매매가 29억원 가운데 상당 부분을 사실상 매도인이 빌려주며 해당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강남구 자곡동 '강남자곡아이파크' 전용 59㎡ 매물에도 '집주인 대출 6억원'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연 5.5% 수준의 이자와 최대 4년 안팎의 상환기간 등을 매도인과 협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파구 잠실동 레이크팰리스 매물에서도 '매도인 대출 가능'이라는 문구가 설명에 등장했다가 삭제됐다.

이는 금융회사에서 필요한 자금을 빌리지 못한 매수인에게 매도인이 잔금 일부를 빌려주고 그만큼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매수인은 부족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고, 매도인은 가격을 낮추지 않은 채 매물을 처분하면서 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

과거에도 없던 방식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 이후 강남권을 중심으로 일부 등장했다가 대출 규제가 완화되자 자취를 감췄다. 최근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다시 낮아지고 은행권의 가계대출 문턱까지 높아지자 고가주택 시장에서 다시 고개를 든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이재명 대통령의 분당 아파트 매매가 근저당권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당 방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 부부는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양지마을' 아파트를 29억원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매수인을 상대로 채권최고액 17억700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매매대금 일부를 추후 지급받기로 하고 이를 담보하기 위한 조치다.

이러한 거래 방식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자 금융당국은 해당 거래가 금융권 대출 규제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29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사적인 거래"라며 이를 사금융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사금융이 아니다. 잔금에 기간이 남아 대금 지급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사인 간 거래이고 여신 대출 규제 대상이 아니라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 입장에서는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대출 규제에 나섰지만, 개인 간 거래까지는 규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매수인과 가격을 낮추지 않고 집을 팔려는 매도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비슷한 거래가 확산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집주인 대출'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손쉬운 우회로는 아니다. 매도인이 이자를 받으면 이자소득에 대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고 차용증과 실제 이자 지급 기록 등을 남겨야 한다. 매도인이 제때 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도 있다. 그럴 경우 결국 담보권 실행이나 경매 등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자금력이 있는 매도인과 고가주택 매수자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출 규제에 따른 주택시장 양극화를 오히려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은 규제로 제한하면서 충분한 자산을 보유한 개인끼리의 자금 거래에는 같은 제한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 간 금융거래인 만큼 확산할 경우 대출 규제가 무력화돼 금융시장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출 규제로 자금 조달이 막힌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거래 방식이 공개되면서 대중에게 일종의 학습 효과를 제공했다"며 "최근 매물 광고에서 '집주인 대출'을 공개적으로 내거는 사례가 늘어난 만큼 고가주택 시장을 중심으로 하나의 거래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