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K방산’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방위산업 생태계를 손본다. 중소·중견업체가 수출 과정에서 적정 이윤을 보장받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방산 대기업이 수출을 통해 받은 납품 대금을 지연 없이 협력사에 지급하도록 제도화할 계획이다. 환율 변동에 따른 하청업체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들여다보고 있다.
◇대기업, 협력사 R&D 지원안 추진
천궁II LIG D&A 제공
29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정부가 보증(G2G)하거나 예산을 투입한 수출 사업에서 대기업이 중도금을 수령하면 일정 기간 이내 협력업체에도 중도금을 의무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가계약법 또는 하도급거래공정화법 등에 반영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민간 기업 수출은 정부·대기업·중소기업 3자 간 합의를 유도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이와 별개로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 납품 계약을 체결할 때 납품 대금을 환율에 연동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 대신 상생평가지수 등을 활용해 입찰 심사에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상생평가지수 등을 통해 대기업이 하청업체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방안도 촉진할 예정이다. 중소·중견기업 경쟁력이 방산 공급망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다.
방위사업청은 최근 여러 경로에서 이 같은 제도 개선안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방사청이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한 한 중견기업 대표는 “정부가 상생평가지수를 새로 마련해 방산 체계 기업의 국내 입찰 평가에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LIG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 등 일부 대기업은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수출 대금 선급금 지원, 납품 대금 외화 지급 등 정부 방침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생태계 새판 짜기에 나선 것은 방산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서다. 에픽AI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국내 방산 체계 기업 6곳의 당기순이익 합계는 2021년 8528억원에서 지난해 3조7536억원으로 4년간 4.4배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방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상장업체 54곳의 순이익 합계는 5321억원에서 3840억원으로 약 28% 줄었다.
◇방산 소부장 3곳 중 1곳 적자
방산 중소·중견기업 이익이 감소한 주요인은 수출 대금 늑장 지급에 따른 이자 부담과 환율 변동 때문으로 분석됐다. 방산 소부장 업체 54곳의 매출과 영업이익 총계는 4년(2021~2025년)간 각각 28.8%, 26.8% 증가했다. 공장을 돌려 제품을 파는 본업에선 이익을 남겼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방산 수출이 2022년부터 본격화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 관행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방산 수출 계약은 국내와 달리 하도급 대금 지급 규정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 대기업이 해외에서 받은 선수금과 중도금을 협력사에 늑장 지급하는 관행이 만연하다”며 “수출을 위한 부품을 생산하느라 고금리 대출을 받아 운영 자금을 마련하는 중소기업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 중소기업은 지난해부터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 수입 가격 인상 폭탄까지 떠안고 있다. 경남 창원의 한 방산 중소기업 대표는 “고환율 때문에 적자를 볼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방산 중소·중견기업 내부에서도 양극화가 발생하는 현상을 우려한다. 자칫 방산 생태계 전반이 무너질 수 있어서다. 지난해 방산 소부장 업체 54곳 중 한국카본, SNT모티브, SNT다이내믹스 등 3곳의 합산 순이익은 2328억원으로 전체의 43.2%를 차지했다. 반면 18곳(33.3%)은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중 휴니드, 한컴라이프케어, 제노코, 아스플로 등 11곳은 2021년 흑자를 내다가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업계 관계자는 “재무 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비상장 방산 중소기업은 한계점을 넘어 고사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