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업들의 경쟁 무대가 제품에서 브랜드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많이 파는 것이 경쟁력이었다. 이제는 문화와 체험, 기술, 그리고 사회공헌까지 소비자와 만나는 모든 접점이 브랜드를 만드는 시대다. 백화점은 예술을 입은 공간을 만들고, 외식업체는 패션 플랫폼과 손잡는다. 커피 전문점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와 연결되고, 화장품 기업은 전시를 통해 브랜드 철학을 전달한다. 제품 자체보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과 신뢰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 브랜드 경험 넓히는 유통가
유통기업들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고 있다. 상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와 예술, 체험을 결합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신세계백화점이 아트 그로서리 ‘어나더 팜’에서 프랑스 아티스트 장 줄리앙과 협업한 도라에몽 한정판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에 문화예술과 식품을 결합한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어나더 팜’을 열었다. 아티스트 굿즈와 캐릭터 IP, 식품을 한 공간에 담고 매월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는 ‘드롭존’을 운영한다. 쇼핑 공간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럭셔리 뷰티 브랜드 설화수는 오는 8월 30일까지 북촌 설화수의 집에서 한국 공예를 주제로 한 특별 전시를 연다. 관람객 참여 프로그램과 체험 키트를 함께 운영하며 브랜드 철학과 한국적 아름다움을 공간을 통해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도미노피자는 무신사와 협업한 신제품을 출시하고 의류·굿즈도 함께 선보였다. 신인 걸그룹 리센느를 광고 모델로 기용해 팬덤 마케팅도 강화했다. 메뉴보다 협업 콘텐츠 자체를 소비하는 문화를 겨냥한 전략이다.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여름의 미학 전시. 아모레퍼시픽 제공
유통기업의 역할도 판매에서 브랜드 육성으로 확대되고 있다. 해외 진출과 공간 기획 등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롯데백화점은 K패션 브랜드의 해외 진출 플랫폼 ‘넥스트랩’을 출범시켰다. 해외 팝업부터 시장 검증, 정식 입점까지 지원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베트남과 일본을 거점으로 국내 패션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돕는다.
매머드커피는 전국 1000호점을 돌파하며 가맹망을 확대하고 있다. 자체 로스팅과 전국 물류 시스템을 기반으로 균일한 품질을 확보하는 한편 모바일 오더 앱 개편과 일본 진출을 추진하며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 기술과 가치도 브랜드 경쟁력
제품 성능뿐 아니라 기술력과 기업 가치도 소비자의 선택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 기술 투자와 사회공헌 활동을 브랜드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롯데는 AI용 회로박과 바이오, 수소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등에 투자를 확대하며 미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넥스트랩 론칭. 롯데백화점 제공
SHK종이없는벽지는 항바이러스 기능과 노화취 저감 기술을 적용한 기능성 마감재를 개발했다. ‘공간 면역’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건강한 실내 환경을 만드는 기술 기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비비안은 미혼모와 여성 청소년 지원, 재난 구호 활동 등을 수십 년간 이어오며 사회공헌을 기업 정체성으로 구축해 왔다. 최근 소비자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흐름에 맞춰 브랜드 신뢰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초록우산과 함께 지역아동센터 학생들의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시니어 바리스타 양성 사업도 확대하는 등 커피 판매를 넘어 교육과 지역사회 프로그램으로 소비자 접점을 넓히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환경(E)과 사회(S)를 넘어 거버넌스(G) 체질 개선에 나서며 경영 투명성과 시장 신뢰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기존 ‘사외이사 2인, 사내이사 1인’ 구조로 운영되던 ESG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 체제로 변경했다. 기업이 경영 활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위법 리스크를 사전에 식별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지 평가하는 국제 표준인 ISO 37301 인증도 추진 중이다.
기업들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드는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농심은 육포깡을 출시 한 달 만에 300만 봉 판매하며 안주 스낵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먹태깡에 이어 성인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군을 키우며 새로운 스낵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