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는 혈액을 떠돌면서 미세한 DNA 조각을 방출한다. 이 ‘순환종양DNA’를 혈액에서 채취해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암세포는 혈액을 떠돌면서 미세한 DNA 조각을 방출한다. 이 ‘순환종양DNA’를 혈액에서 채취해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혈액 속 종양 DNA를 추적해 암이 커지기 전에 항암제를 바꾸는 치료가 유럽에서 허가됐다. 종양이 커진 뒤 치료제를 교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분자 수준의 내성을 먼저 포착해 대응하는 길이 열렸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유럽 당국이 경구용 유방암 치료제 ‘에트카마’(성분명 카미제스트란트)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치료 대상은 에스트로겐수용체(ER) 양성·사람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2(HER2) 음성인 진행성 유방암 환자다. 1차 치료 중 혈액에서 ESR1 변이가 새로 검출됐지만 영상학적 질병 진행은 나타나지 않은 환자에게 사용한다.

내성을 조기에 찾는 데 활용된 것이 혈액 속 ‘순환종양DNA(ctDNA)’다. ctDNA는 암세포가 죽거나 분해될 때 혈액으로 나온 DNA 조각이다. 채혈만으로 유전자 변이와 변이량을 추적할 수 있다. 기존에는 2~3개월 간격으로 CT나 MRI를 촬영해 종양이 커지거나 새로운 병변이 나타난 뒤 치료제를 바꿨다. 에트카마는 ctDNA를 반복 검사해 영상검사보다 먼저 내성 신호를 포착하고, 기존 아로마타제 억제제를 에트카마로 교체하는 전략이 허가로 이어졌다.

ESR1은 유방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에스트로겐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다. 아로마타제 억제제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생성을 줄여 암세포의 성장을 막는다. 하지만 ESR1 변이가 생기면 에스트로겐이 적어도 수용체가 계속 작동해 기존 약의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에트카마는 이 수용체를 분해해 내성을 차단하는 치료제다.

허가 근거가 된 글로벌 임상 3상은 ctDNA를 정기적으로 검사해 영상검사에서 암의 진행이 확인되기 전에 치료제를 바꾸는 전략을 세계 최초로 검증했다. 임상 3상은 혈액검사에서 ESR1 변이가 발견됐지만 CT나 MRI에서는 아직 암이 진행하지 않은 환자 315명을 대상으로 했다. 대조군은 기존 치료를 계속했고, 투약군은 기존 호르몬치료제를 에트카마로 바꿨다.

그 결과 에트카마 전환군의 암이 줄었고 재발 없이 약이 잘 듣는 수치인 무진행생존기간(mPFS)은 16.0개월로 기존 치료 유지군의 9.2개월보다 6.8개월 길었다.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은 56% 낮았다. 데이브 프레드릭슨 아스트라제네카 항암혈액사업부 총괄은 “암이 진행하기 전에 내성에 대응하는 1차 치료 패러다임의 중요한 전환”이라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