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미국·이란 전쟁 발발 후 금값은 20% 이상 급락했다. 수년간 금값 상승세를 경험한 투자자들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이 같은 가격 조정이 매수 기회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중국 등 세계 중앙은행들이 보유 자산을 다각화하며 금 매입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국·폴란드 등 중앙은행 금 매입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22일(현지시간) 8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4135.8달러를 나타냈다. 연초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트로이온스당 5318.4달러보다 약 22% 낮은 수준이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대표적인 금 상장지수펀드(ETF) ‘SPDR 골드셰어즈(GLD)’ 역시 379.1달러로 연초 최고점(495.9달러) 대비 약 23.5% 하락했다. 미국·이란 전쟁이 금값 하락을 촉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값 하락에…중앙은행들 "보유량 늘리자"
이는 일반적인 금값 움직임과 다른 모습이다. 보통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면 안전자산인 금에 투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는 금값이 큰 폭으로 올랐다. 이번에 시장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에 더 주목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높은 수준에서 더 오래 유지하거나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자산이어서 금리가 오를수록 국채 등보다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조반니 스타우노보 UBS 최고투자책임자실 전략가는 “금값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금리가 하락할 때 가장 좋은 성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월가에서는 금 가격 조정을 ‘저가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글로벌 중앙은행이 금 매입을 꾸준히 늘리고 있는 점이 대표적인 강세론 근거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은 올해 1분기 243t의 금을 매입했다. 전 분기 대비 17%가량 증가한 수치다. 중국과 러시아 등이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제재에 노출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준비자산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에 따른 결과로 평가된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은 6월 기준 외환보유액이 3조4163억달러로 전월 대비 0.75%(260억달러)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금 보유량은 7544만트로이온스로 전월보다 48만트로이온스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중동 국가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금을 매도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제 확인된 대규모 매도 사례는 튀르키예 정도였다”며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 증가는 외환 보유 자산으로서 금의 가치를 입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정학적 위협을 느끼는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금을 매입하고 있다. 올 1분기 세계에서 가장 금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선 곳은 폴란드 중앙은행이다. 러시아의 군사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분기 순매입 규모가 31t에 달했다.

◇ 美 주식 헤지 기능도

Fed가 금리 결정을 연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달 초 케빈 워시 Fed 의장은 미국 인플레이션의 원인, 인공지능(AI) 기술이 생산성·고용·물가에 미치는 영향, 대규모 채권 보유 및 지급준비금 체제 재검토 내용이 포함된 5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워시 의장이 “대부분의 권고안을 올해 말까지로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조사 결과가 상당히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Fed가 정책 판단을 늦추다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거나 반대로 AI 투자 열기 둔화 등을 확인하고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최근 변동성이 커지는 미국 주식시장의 헤지(위험 회피) 수요도 금 투자가 확대될 요인으로 꼽힌다. AI 투자 붐에 힘입어 상승세를 이어가는 미국 증시가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받으면 여기에 대비할 자산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WSJ는 “증시가 받을 예상치 못한 충격에 대비해 포트폴리오 분산이 중요하다”며 “금의 투자 가치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