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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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 내 유해물질이 기준치 이하였더라도 과로나 열악한 근무환경 등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게 인정된다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울산지방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송재윤)는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원고 승소 판결했다. 스테인리스스틸 연마공으로 일하던 A씨(사망 당시 만 70세)가 2024년 3월 뇌출혈로 사망하자 A씨 배우자가 “유해물질 흡입, 소음 때문에 병이 생긴 것”이라며 유족급여 등을 요구한 사건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 발병과 업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를 거절했다. 사업장 내 망간 및 무기화합물, 크롬, 니켈(금속), 산화철 분진, 소음 등 유해인자가 기준치 이하로 측정됐기 때문이다. A씨가 과거 뇌동맥류 파열 등으로 장해등급 진단을 받은 것도 미지급 사유로 제시됐다.

법원은 A씨가 과중한 업무 부담에 처한 사실에 주목해 근로복지공단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장해등급 판정을 받은 고령자라 신체적 활동에 어려움이 많은데도, 사측에서 발주 물량을 맞추기 위해 A씨에게 생산과장 업무를 부여한 뒤 주 45시간 근무를 시킨 게 문제라고 판단했다. A씨가 사망하기 직전엔 다른 근로자 두 명이 휴직하는 바람에 A씨 업무량이 더 늘어났다.

재판부는 “A씨에게 하루에 부여된 휴식시간은 20분에 불과했을 뿐”이라며 “A씨가 수행한 업무가 당시 건강상태에 비해 과중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작업장에서 유해물질이 지속적으로 검출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재판부는 “단순히 기준치 이하로 측정됐다는 사정만으로 (장기간 노출된) 유해물질 및 소음이 A씨 사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앞서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과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 판례를 바탕으로 “A씨가 수행한 업무가 발병 및 사망을 가속화했다면 고인이 고령 등 위험인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