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테이블코인시장에서 테더와 서클의 아성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테더가 발행하는 USDT와 서클의 USDC가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육박한다. 후발주자가 잇달아 ‘달러코인’을 내놨지만 대부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발행보다 유통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거래소와 지갑, 결제망, 은행 계좌까지 연결된 기존 강자의 자리를 넘보기 어려운 이유다.
◇테더·서클 아성 무너질까
비자와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코인베이스 등이 주도하는 ‘오픈USD’(OUSD)가 주목받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OUSD는 단순히 또 하나의 달러코인이 아니다. 기존 금융·결제 인프라를 등에 업은 공동 지급결제망에 가깝다. 글로벌 카드망을 장악한 비자와 마스터카드, 온라인 결제 강자인 스트라이프, 글로벌 가상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가 한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에 블랙록, 스탠다드차타드(SC), 구글, IBM 등 전통 금융회사와 빅테크까지 가세했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새로 시장에 들어오는 사업자는 코인을 받아줄 거래처와 결제처를 확보하지 못하면 발행 규모를 키우기 어렵다”며 “OUSD는 시작부터 140여 개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내 이 약점을 보완했다”고 평가했다.
OUSD가 기존 스테이블코인과 차별화되는 또 다른 이유는 수익 구조다. 테더와 서클은 이용자가 맡긴 달러를 미 국채와 현금성 자산 등으로 운용해 얻는 준비자산 이자 수익을 핵심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발행 규모가 커질수록 준비자산이 늘고, 금리 상승기에는 이자 수익도 함께 커진다.
OUSD는 발행·상환 수수료를 없애고 준비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컨소시엄 참여 기업과 나누는 방식을 내세웠다. OUSD 사용이 늘어날수록 참여 기업이 나눠 받는 수익도 증가할 수 있다. 기존 발행사가 독점해온 수익을 결제망과 플랫폼 참여자에게 배분해 생태계 확산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OUSD가 스테이블코인 경쟁의 축을 바꿀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금까지 경쟁의 핵심은 누가 더 신뢰도 높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느냐였다. 앞으로는 결제처와 정산망, 플랫폼을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韓 기업도 선점 경쟁
국내 기업의 참여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월렛을 통해 글로벌 결제 접점을 확보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은행·카드 계열사를 통해 해외 결제와 정산망 변화에 대응할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다. KB국민카드 등 국내 카드사가 대거 이름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OUSD가 카드 결제망과 결합하면 결제는 기존 카드처럼 이뤄지지만 정산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처리되는 구조가 가능해질 것이란 예상에서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모바일 기반 금융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자산 결제·송금 서비스로 확장할 여지가 있다. 두나무는 가상자산 거래와 지갑, 원화 입출금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스테이블코인 유통 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화생명은 해외 자산 운용과 글로벌 금융 서비스 확장 관점에서 스테이블코인 기반 정산 인프라를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내에서 당장 OUSD 기반 서비스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할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실제 사업보다 글로벌 지급결제 질서 변화에 대비해 초기 네트워크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