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AI 시대 혁신, 그 기회와 위협
혁신의 두 얼굴, 창조와 파괴
창조의 혜택은 장기·광범위
파괴의 비용은 단기·국지적
이런 차이가 불만과 저항 불러
대한민국이 AI 선도국 되려면
결국 정치가 혁신의 촉매 돼야
안현실 UNIST 연구부총장
창조의 혜택은 장기·광범위
파괴의 비용은 단기·국지적
이런 차이가 불만과 저항 불러
대한민국이 AI 선도국 되려면
결국 정치가 혁신의 촉매 돼야
안현실 UNIST 연구부총장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보급이 그토록 중요한데 왜 혁신 촉진에 비해 덜 주목받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보급을 기업의 마케팅 이슈쯤으로 간주한 탓일지 모르겠다. 만약 혁신 보급을 저해하는 사회적 마찰이 존재한다면 이건 기업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1700년대 중반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가 포착된 것은 1800년대로 들어오면서부터다. 혁신 보급에 맞선 사회적 마찰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AI 시대 혁신이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라면 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창조적 파괴’라는 혁신의 정의 자체가 이미 마찰을 예고한다. 창조를 위해서는 파괴가 불가피하다. 혁신은 ‘창조’와 ‘파괴’,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창조를 촉진하는 경쟁을 벌여왔다. 혁신은 불확실성이 높아 ‘실패의 위험성’이 크다. 그래서 정부는 창조하는 쪽의 위험성을 공유하기 위해 보조금, 세제 등 각종 정책수단을 개발했다. 파괴당하는 쪽도 마찬가지로 ‘파괴의 위험성’을 떠안는다. 하지만 그 위험성을 공유할 수단은 상대적으로 덜 개발된 형편이다.
또 다른 필연적 마찰 요인도 있다. 혁신에 따른 창조의 혜택은 장기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진다. 반면 파괴로 인한 비용은 단기적이고 국지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시간과 체감도 차이가 저항을 불러온다. 저항이 거세지면 혁신은 보급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AI 시대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고 싶다면 창조를 향한 도전은 최대화(혁신 촉진)하고, 파괴로 인한 저항은 최소화(보급 확산)할 수 있어야 한다. 단,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도전의 최대화와 저항의 최소화 간 선순환이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혹여 저항을 줄인다는 처방이 도전을 위축시켜 버린다면 혁신 자체가 사라지는 국가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걱정되는 변수가 있다. 바로 정치다. 당장 정치가 저항과 격차 불만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기업의 혁신성과 공유를 들고나온다고 해 보자. 예컨대 정부가 혁신기업의 지분을 갖겠다거나 국민에게 나눠주겠다는, 비록 외신을 통해 들려 오지만 전염이 우려되는 발상이 이 범주다. 현실이 된다면 기업가가 혁신에 도전하는 핵심 동인인 초과이윤(혁신 성공에 따른 잠정적 독점이윤) 기대 자체가 확 꺾이고 말 것이다.
기업의 초과이윤으로 불어나는 초과세수에 대한 정부의 재배분 논의도 그 방향성이 중요하다. 기존 일자리의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아는 국민 개개인은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불안하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파괴의 위험성을 공유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교육과 리스킬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담대한 투자를 단행해 볼 만하다. 이거야말로 혁신의 창출과 저항 해소, 격차 축소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선순환 지출이다. 지역 성장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매력적인 인프라 투자로 지역의 자생적인 혁신생태계를 창출해야 지속 가능성이 있다.
한편 아틀라스 로봇 논란은 정부가 훈수나 두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의 로봇도 들일 수 없다면, 첨단 AI 공장은 나라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중국의 혁신 보급 속도까지 계산하면 위기감은 더해진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리스킬링으로 새 일자리 찾기가 용이하다. 인적 자본 투자 유인도 올라간다. 노동 개혁 없이는 혁신도 보급도 없다.
한국 정치에 묻고 싶다. 어디로 갈 것인가. 포퓰리즘의 유혹이 커지는 AI 시대일수록 혁신의 본질에 집중할 때다. 정치가 혁신의 기회가 되기는커녕 위협이 된다면 개인도 기업도 지역도 국가도 추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