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전쟁과 도덕
이란과의 전쟁에서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장비와 물질을 거의 다 파괴했다. 이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울 만한 업적이다. 신정국가(神政國家)라서 유난히 위협적인 이란이 적어도 10년 동안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없도록 만들었으니, 이란 달래기에 매달린 전임자들이 꿈도 못 꿨던 성취다. 아쉽게도, 이어진 휴전 협상은 그의 지지자를 실망시켰다. 그의 첫 임기 당시 부통령이던 마이크 펜스는 트럼프의 협상을 “유화책(appeasement)”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란군의 무력화로 쉽게 끝난 전쟁이 이렇게 꼬인 것은 트럼프가 체제 변화(regime change) 대신 이란 정권과의 협상을 통한 종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자신이 직접 나서서 협상을 주도했다. 담당 부서인 국무부를 협상에서 배제하고, 그는 외교 경험이 없는 특사들을 보냈다. 외교관과 달리 특사들은 협상이 깨지면 난처해진다. 자연히 이란의 끈질긴 요구를 들어주게 됐다.

트럼프가 이란 정권과의 협상이라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근본적인 원인은 그의 유난히 낮은 도덕성이다. 그는 늘 보편적 규범보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운다. 그래서 사람들의 판단을 인도하는 규범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지난해 12월 하순 압제와 가난에 시달린 이란 인민들이 대규모 항의 시위에 나서자 올해 1월 12일 트럼프는 “우리가 도우러 간다”며 시위를 격려했다. 2월 28일 전격적으로 이란을 공습하면서 그는 외쳤다.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이란 인민에게 오늘 밤 나는 말합니다. 여러분의 자유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 우리가 이 일을 끝내면 여러분의 정부를 인수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것일 터입니다.”

그러나 전투가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6월 14일엔 “나는 이란의 체제 변화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이란 정권은 4만 명가량의 인민이 죽었다고 인정했는데, 다수가 “우리가 도우러 간다”는 트럼프의 격려에 고무돼 시위에 나섰다가 학살됐다. 그가 체제 변화에 관해 거짓말한 까닭은 그가 이미 이란 정권과 협상을 해왔다는 사정이다. 그가 자신이 거세게 공격한 정권과 협상을 시작한 것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석유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간 선거가 다가오는데, 경제가 어려우면 그의 반대파가 의회를 장악해 그가 탄핵당할 위험이 빠르게 커질 터였다. 겁이 난 트럼프는 전쟁에서 패배한 이란 정권과 협상을 시작한 것이었다.

만일 그가 평균적 도덕성만 지녔더라도 그는 이란의 체제 변화를 추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란 인민의 지지를 받아 이미 약해진 신정정치 세력을 제압했을 것이다. 실제로 체제 변화가 이뤄지면 핵무기 제거나 호르무즈해협의 안전과 같은 문제는 원천적으로 해결된다.

설령 신정정치 세력의 자폭 공격으로 세계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도 “9000만 명의 이란 인민을 중세적 신정정치의 압제로부터 구출하는 일인데, 기름값 좀 오른다고 투정하는가?”라는 한마디로 불평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런 사정을 끝내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낮은 도덕성이 그의 판단을 흐리게 한 것이다. 사회를 이루는 종의 개체는 다른 개체와 어울려 살도록 진화했다. 그렇게 어울려 살도록 인도하는 지혜가 도덕성이다. 그래서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이 대체로 잘 산다. 인류 문명에서 가장 큰 사건은 전쟁이다. 당연히 전쟁을 수행하는 지도자는 높은 도덕심이 부여하는 깊은 지혜를 지녀야 한다.

1970년대 말엽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의실험을 통해 도덕성의 역할을 전략적으로 분석했다. 이 실험에서 비협력적으로 설정된 프로그램은 번창하지 못했다. 처음엔 상대를 배신해 큰 이익을 보지만, 연이은 반복게임에서 다른 프로그램의 외면으로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액셀로드는 그 실험에서 얻은 통찰을 개인에 대한 실질적 조언으로 바꾸었다. ①시기하지 마라. ②배신하지 마라. ③상대의 협력과 배신에 대해선 똑같이 해줘라. ④너무 약게 행동하지 마라. 참으로 좋은 조언인데, 아쉽게도 실천하기는 무척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