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원유 남아도는데 비싼 국산 우유값
원유가 남아돈다는데 가격은 왜 안 내려갈까. 최근 대형마트 우유 매대 앞에서 소비자가 떠올릴 법한 질문이다. 냉장 진열대의 국산 흰 우유는 1L 한 팩에 3000원 안팎이다. 옆 매대와 온라인몰에서는 수입 멸균유가 박스 단위로 팔린다. 상온 보관도 가능한 이 제품의 가격은 1300~2000원대다. 국산 원유는 남아도는데 소비자는 비싼 우유값을 부담해야 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022년 26.2㎏에서 지난해 22.9㎏으로 줄었다. 저출생과 대체음료 확산, 1인 가구 증가로 수요가 급격히 감소한 영향이다. 올해 1~3월 하루평균 원유 생산량은 5417t, 사용량은 4881t이다. 하루 536t의 원유가 남은 셈이다. 2022년 같은 기간보다 남는 우유가 45% 늘었다.

수요가 줄어들고 원유가 남아도는데도 우유값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유가공협회에 따르면 원유 기본 가격은 L당 1084원이다. 인센티브와 집유비 등을 포함한 유업체의 실제 지급가격은 L당 1280원대로 추정된다. 이창범 한국유가공협회장은 “연간 마시는 우유용 원유를 194만t 사들이기로 돼 있는데 실제 수요는 160만t 안팎이어서 남는 34만t을 업계가 떠안고 있다”고 토로했다.

문제의 핵심은 원유 가격 결정 구조다. 국내 원유 가격은 ‘원유 가격 생산비 연동제’에 따라 움직인다. 시장 수요와 공급보다 농가의 생산비 변동에 따라 결정된다. 2023년부터는 음용유와 가공유 가격을 달리 정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도입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생산비 중심의 가격 경직성이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낙농가 소득을 안정시키기 위한 장치가 우유값이 경직된 배경인 셈이다.

최근엔 수입 멸균유가 국내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멸균유 수입량은 2021년 2만3119t에서 지난해 5만740t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올해 1월 미국산 멸균유 관세가 철폐됐고, 7월 EU산 멸균유도 무관세로 전환된다. 멸균유 수입량이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소비자는 비싼 우유값에 지갑을 닫고, 유업체는 팔리지 않은 원유와 재고 부담을 떠안고 있다. 정부가 낙농가 보호를 이유로 근본적인 가격 구조 개편을 미루면서 소비자와 유업체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국산 우유가 살아남으려면 가격 구조부터 시장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수입 멸균유 판매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낙농가 보호라는 명분 아래 시장 변화를 외면한다면 결국 먼 미래에 그 피해는 경쟁력을 잃은 낙농가가 떠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