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넘치는 돈, 고조되는 불안감
지난해 ‘6·27 대책’ 이래 초강력 규제가 잇따랐지만 집값은 우상향을 지속 중이다. 정부 출범 후 1년 상승률은 15%(서울 기준)로 이전 최고였던 노무현 정부(12%)를 앞질렀다. 최후수단이라던 ‘보유세 인상’ 예고도 별무효과다.

이쯤 되면 주택시장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인플레이션 국면이다. ‘지속적·전반적 가격 상승’이라는 정의에 잘 들어맞는다. 전·월세도 급등해 서울 강북에서도 300만원대 월세가 수두룩하다. 많은 무주택 국민과 청춘은 고통과 좌절을 넘어 생존을 걱정할 판이다. “인플레이션은 강도처럼 난폭하고 폭력배처럼 위협적이며 청부살인자처럼 치명적”(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라던 경구가 떠오른다.

백약이 무효처럼 보이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진단하면 대책도 감이 잡힌다. “인플레는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밀턴 프리드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집값 급등은 기본적으로 너무 많이 풀린 통화 탓이다. 지난달 한국은행 보고서와 김종양 의원 분석에서도 통화량(M2)과 집값 정비례는 분명했다.

정부별 아파트값 변동을 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임기 중 전국 아파트 상승률은 문재인(78%), 노무현(64%), 박근혜(17%), 이명박(-4%) 순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이명박 정부를 빼면 연평균 통화량 증가율(문재인 10.2%, 노무현 9.6%, 이명박 8.4%, 박근혜 7.8%)과 판박이다. “너무 적은 재화를 너무 많은 돈이 쫓고 있는 것이 인플레의 원인”이라던 프리드먼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너무 적은 재화(아파트)’의 공급을 갑자기 늘릴 방법이 없기에 ‘너무 많은 돈’에 대한 통제가 시급하다.

기실 통화량은 집값을 넘어 거의 모든 가격의 원인이다. 물가는 두말할 필요 없고, 주가에도 유동성이 결정적이다. 최근 3년(2023~2025년)간 독일 경제는 역성장했지만 증시는 76% 올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 불황을 적극적인 돈 풀기로 대응한 결과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코스피지수는 코로나 위기 한복판에서 15개월(2020년 4월~2021년 6월)간 88% 뜀박질했다. 여섯 차례에 걸쳐 117조원의 기록적 추경을 푸는 동안 일어난 일이다.

아킬레스건이 된 환율 급등도 통화량을 빼놓고는 논하기 어렵다. 통화증가율이 미국보다 높고, 그 차이에 비례해 원화가치가 하락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한국은행은 통화와 환율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나섰지만 직관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렵다. 파운드 같은 기축통화조차 통화 남발에 따른 재정 악화로 역사의 뒷무대로 밀려나지 않았는가.

이재명 정부의 유동성 확대는 위험 수위다. 출범 11개월 동안 M2가 413조원(수익증권 포함한 구 M2 기준) 불었다. 월평균 37조원으로 코로나로 다급했던 문재인 정부(21조원)를 웃돈다. 4월 M2 증가율은 10.3%로 문재인 정부 최고치(12%)에 근접했다.

위기감 실종도 걱정이다. 내년 확장 재정을 공언했고 26조원 ‘전쟁 추경’이 집행되는 와중에 2차 추경설이 솔솔 흘러나온다. 민간이 호황이면 재정 및 통화는 긴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걸 정부도 안다. 하지만 행동은 거꾸로다. “정부의 과도한 지출이 수많은 국가를 파괴했다”(일론 머스크)는 역사적 사실과 싸워선 승산이 없다.

가만 있어도 통화량 악재가 쏟아지는 시절이다. ‘빚내서 투자’ 열풍에 증권사 신용융자잔액은 40조원에 육박하며 연일 신기록 행진 중이다. 신용·마이너스 대출 등 ‘금융권 기타 대출’도 5월 한 달간 9조3000억원 급증했다. 금융권 신용창출(대출)은 통화량과 직결된다.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역시 공사채 발행, 기업대출 증가로 이어져 유동성을 부풀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향후 3년간 2000조~3000조원으로 기대되는 반도체발 천문학적 이익과 경상흑자 관리도 넘어야 할 산이다. 속출하는 임금·성과급 인상 요구와 초과세수(초과이익) 논쟁은 그 자체로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국고에 여유가 생기면 후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당대의 안정적 경제 운용을 위해서도 공적자금·국채 상환을 우선해야 한다. 그게 국가재정법에 명시된 정석이다.

내년엔 나랏빚이 비(非)기축 선진국 평균을 넘어선다. 돈 가치가 파괴되면 재산권과 자유도 파괴된다. 통화와 나랏빚 관리는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