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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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특화단지 지정에서 고배를 들었던 호남이 3년 만에 국내 반도체 산업 양대 거점으로 떠올랐다.

광주·전남은 2023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공모에서 '시스템 반도체용 차세대 패키징'을 앞세웠지만 최종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당시 지역 정치권에선 선도기업과 투자계획을 둘러싼 전략 부재가 탈락 원인으로 거론됐다.

이후 전남테크노파크(전남TP)가 독자적인 반도체 산업 육성계획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29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광주·서남권 투자 구상을 공개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3년 전 '반도체 특화단지' 탈락한 호남 '대반전'

이날 업계에 따르면 광주·전남은 2023년 2월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공동 유치를 위한 전략기술로 시스템 반도체용 차세대 패키징을 선정해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서와 육성계획서를 냈다. 광주 첨단지구 일대에 글로벌 반도체 패키징 기업 앰코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산업 기반을 갖췄다는 점을 내세웠다. 전국 유일 광역단체 간 협력 모델,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과 원전을 결합한 에너지믹스, 부지·용수·교통 인프라, AI·자동차·전력 등 전후방 산업도 강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는 같은 해 7월 용인·평택, 경북 구미를 반도체 분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했다. 특화단지엔 21개 지역이 신청했다. 정부는 선도기업 유무, 신규 투자계획, 산업 생태계 발전 가능성, 지역균형발전 등을 중점 평가했다. 반도체 분야에선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2042년까지 562조원을 투자하는 용인·평택, SK실트론·LG이노텍 등이 4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구미가 선정됐다. 광주·전남은 대규모 민간투자 구도에 밀린 셈이 됐다.

탈락 이후 지역 정치권 중심으로 쓴소리가 나왔다. 전남도의회 도정질문에선 광주·전남의 상생 1호 사업이 특화단지 공모에서 탈락한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이란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부의 특화단지 조성 취지가 산업 인프라와 기업이 집적화된 지역을 육성하는 것인데도 이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 무엇보다 '기업 투자계획 미흡'이 탈락 이유 아니냐는 비판이 뼈 아픈 대목으로 남았다.

탈락의 충격은 독자 육성 전략으로 이어졌다. 전남TP는 2024년 '전남형 반도체 산업 육성 5개년 계획' 수립을 위한 사전 작업에 착수했다. 이 계획의 기본 방향은 독자적 '전남형 반도체 산업 육성'에 맞춰졌다. 전남TP는 국내외 반도체 산업 동향 분석, 전남 반도체 산업 여건·실태조사 등을 거쳐 중장기 육성전략과 정책 방향, 추진과제를 도출하기로 했다.

계획에는 글로벌 파운드리 유치 전략도 포함됐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뿐 아니라 해외 파운드리 기업도 유치 대상으로 올려놓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시 전남TP는 광주·전남에 반도체 패키징 전문업체인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를 제외하면 규모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달 들어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초대형 투자설이 급부상했다. 이날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앞두고 삼성·SK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포함한 투자계획을 발표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투자 규모만 10년간 2000조원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호남에 반도체 팹을 6기 이상 짓는 방안,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와 광주 첨단3지구 검토 가능성 등도 언급됐다.
광주 첨단3지구 일대 모습. 사진=광주매일신문 제공
광주 첨단3지구 일대 모습. 사진=광주매일신문 제공

"새로운 기회 열려…지역사회 기대감 크다"

이날 발표는 호남 반도체 구상을 공식 의제로 끌어올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국민보고회에서 반도체, 피지컬 AI(인공지능), AI 데이터센터를 대도약의 삼각축으로 제시했다. 반도체 분야에 대해선 폭증하는 수요에 맞춰 현재 생산 거점을 빠르게 완성하고 서남권 대규모 신규 투자로 압도적 공급 역량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용인·평택 중심 설비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의 반도체 투자 후보지로 광주를 직접 언급했다. 전력·용수·인력 확보와 인프라·인센티브 지원이 기대되는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 회장은 "기흥, 화성, 평택에 이어 용인 국가산단의 투자 일정이 많이 빨라졌고 새로운 단지를 준비해야 할 시점도 앞당겨졌다"며 "고대역폭메모리(HBM) 팹은 기존의 반도체 후공정 팹과 함께 천안, 온양 등 충청권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약 1000조원, 반도체 공급 확장 프로젝트에 약 1100조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 완공 시점을 2045년에서 12년 앞당기고 D램 증산을 위해 용인에 약 600조원, 낸드 증산을 위해 청주에 약 100조원을 조기 투입하겠다고 했다. 이후 메모리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서남권에 400조원을 투자해 새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최 회장은 "향후 10년간 SK는 평균 (매년) 100조원 이상의 국내 투자를 계속 집행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3년 전 특화단지 선정 탈락으로 굴욕을 겪었던 호남이 국가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르는 반전 스토리를 쓴 것이다. 이번 발표를 실제 투자와 공장 착공, 전력·용수·인력 인프라 확충으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할 수 있을지 여부가 관건으로 꼽힌다.

전남TP 관계자는 "5개년 계획과 지금 논의되는 제2 클러스터는 별개 맥락이고 당시엔 파운드리 유치가 안 됐었던 터라 우주·방산 쪽 팹리스 기업 육성으로 방향을 틀었던 건데, 메모리 수요가 이렇게 급증할 줄은 몰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과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겹치면서 완전히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는 분위기다. 지역사회 기대감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홍민성/김대영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