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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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대형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확산이 보행자 사망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차량 전면부 높이와 사각지대 확대가 보행자 안전을 구조적으로 악화시키고 있어다는 평가다.

21일 뉴욕타임스(NYT)는 차량 크기가 지난 25년간 비슷하게 유지됐다면 매년 약 200~400명의 보행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최근 보행자 사망 증가분의 약 10%에 해당한다. 미국 도로는 수십 년간 보행자에게 더 안전해지는 추세였지만, 2009년께부터 흐름이 바뀌었고 이후 연간 보행자 사망자는 약 75% 증가했다. 연구자들은 스마트폰, 음주운전, 부주의 운전만으로는 미국에서 나타난 사망자 급증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형차가 더 치명적인 이유는 보닛이 높고 사각지대가 크기 때문이다. 일반 세단은 보행자의 하체를 치기 때문에 보행자가 보닛 위로 올라가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 반면 현대식 픽업은 평균 보닛 높이가 거의 4피트에 달해 보행자의 가슴 부위를 치고, 보행자를 노면으로 밀어 쓰러뜨린 뒤 차량이 다시 밟고 지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SUV의 사각지대도 커졌다. 3차원 스캐너를 활용해 쉐보레 실버라도, 포드 F-150, GMC 시에라, 도요타 타코마 등 현재 인기 픽업 4종과 1990년대 또는 2000년대 초반 모델의 시야를 비교한 결과, 실버라도의 사각지대는 거의 두 배로 늘었고, 시에라와 타코마는 약 60% 커졌다. 증가 폭이 가장 작은 F-150도 사각지대가 약 25% 확대됐다.

대형 보닛뿐 아니라 A필러와 대형 사이드미러도 시야를 제한한다. A필러는 전복 사고 때 탑승자를 보호하지만 차량이 커지면서 함께 두꺼워졌다. 운전석 쪽 A필러는 특히 좌회전 때 보행자를 가리는 큰 사각지대를 만든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 업계는 대형차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데 반박했다. 포드 대변인 마이크 러바인은 "차량 안전이 중요하지만 대형차를 보행자 사망의 원인으로 보는 것은 도로 설계 등 체계적 문제를 간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너럴모터스(GM) 대변인 빌 그로츠도 "전방 보행자 제동 기능이 탑재된 GM 차량에서 부상 발생 빈도가 35% 줄었다"는 연구를 언급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대변인 숀 러시턴은 "자동 충돌회피 기술이 보행자 사고를 줄이는 핵심 전략"이라고 밝혔다.

대형 SUV와 픽업은 자동차업계의 수익 구조와도 맞물려 있다. 포드와 GM은 거의 10년 동안 연례보고서에서 수익이 대형 SUV와 픽업에 달려 있다고 밝혀왔다. 대형차는 세단보다 제조비가 크게 높지 않지만, 소비자는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앞으로의 쟁점은 자동 안전 기술 확대만으로 보행자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지 여부다. 자동차 업계는 충돌회피 장치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연구자들은 시야 확보와 차량 전면부 설계가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NYT는 "대형 픽업과 SUV가 자동차업계 이익의 핵심인 상황에서, 보닛 높이와 사각지대에 대한 규제 논의는 미국 도로 안전 정책의 주요 과제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