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의사결정의 번복이 필요한 시대
황형준 BCG코리아 대표
최근 기업 경영진과 인공지능(AI) 전략을 논의하다 보면 이전에는 없던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이 비단 고객사와의 전략 논의 현장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BCG 내부에서도 AI 전환 프로젝트와 컨설턴트 역량 개발 방향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몇 달 전만 해도 유효하던 가정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폐기되고, 채용과 육성의 기준 역시 재점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과거에는 전략의 완성도가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은 전략을 조정하고 재정렬하는 민첩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AI는 기술 변화의 속도뿐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이 유효한 시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빠르게 재편되는 기술 경쟁 구도
이 같은 변화는 기술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BCG가 분석한 산업기술 시장에서도 기존 성장동력이던 자동차산업과 친환경 전환 관련 시장은 성장세가 둔화한 반면 방위산업과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새로운 성장 축으로 떠올랐다. 이는 단순히 산업 재편과 시장 전망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투자와 사업 포트폴리오, 고객 전략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뒤집기와 우유부단함은 다르다
그렇다고 모든 결정을 쉽게 뒤집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결정을 바꾸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어떤 신호를 근거로 언제 방향을 수정할 것인지다. 우유부단한 조직은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상황에 따라 흔들린다. 반면 민첩한 조직은 명확한 가설과 전략을 바탕으로 움직이되,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면 기존 전제를 재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과감하게 방향을 바꾼다. 결국 조직의 민첩성은 리더가 자기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용기에서 출발한다.대표적인 사례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CEO 취임 이후 윈도우 중심 기업이던 마이크로소프트를 클라우드 기업으로 전환했고,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자 다시 한번 AI를 미래 성장의 핵심 축으로 판단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기존 성공 공식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맞춰 자신의 가정과 전략을 수정한 결과다. 오늘날 기업 경영에서 위험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 기존 결정을 수정해야 할 신호가 나타났는데도 이를 외면하는 것이다.
단판 승부로는 부족한 시대
AI 기술이 기업 전략의 전제 자체를 빠르게 바꾸고 있는 지금,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 번의 결정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게 아니라, 변화의 신호를 누구보다 빠르게 읽고 새로운 정보에 맞춰 판단 기준을 조정하며, 조직이 적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선 먼저 강한 확신보다 끊임없이 학습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리더가 경험을 바탕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정보와 기술, 그리고 시장 변화 앞에서 스스로 판단을 계속 의심하고 배워나갈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완벽한 전략과 계획에 집착하기보다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 AI 기술은 변화의 속도 자체가 너무 빠르다. 처음부터 정답에 가까운 계획을 세우려고 하기보다 빠르게 실행하고 결과를 통해 배우는 접근이 훨씬 현실적이다. 셋째, 조직의 민첩성이 경쟁력을 결정한다. 전략은 수립보다 실행 과정에서 훨씬 더 자주 수정된다. 따라서 변화에 맞춰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자원을 재배분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 구조가 필요하다.
오늘날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의 가정을 점검하고, 환경 변화에 맞춰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이다. 과거에는 스스로의 판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을 강한 리더로 평가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더 나은 답이 보일 때 기존 판단을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강한 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