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잘 된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
권기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이 같은 흐름은 글로벌 혁신 기업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전략적 인사’는 경영진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이해하고, 새로운 전략을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도록 돕는다. 예컨대 기업이 AX, 즉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업무 방식과 조직 운영을 재편하는 변화를 추진한다고 해보자. 과거의 인사라면 AI 교육 과정을 제공하는 데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략적 인사는 구성원이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재설계해야 하는지, 조직 구조와 보상 체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사업 전략과 연결해 풀어간다. 이처럼 인사는 대서방의 역할을 넘어, 전략 실행과 조직 변화를 이끄는 경영의 중심부로 들어서고 있다.
인사는 왜 보이지 않아야 하나
높아진 위상과 달리, 사실 제대로 작동하는 인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를 떠올려보면 관중은 심판을 기억하지 못한다. 심판이 화제가 되는 건 주요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때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인사 문제가 뉴스에 오른다는 것은, 진작 작동했어야 할 인사 기능이 제때 움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최근 삼성전자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서 인사팀이 전면에 등장했다. AI가 일하는 방식을 통째로 흔드는 지금, 이런 장면은 앞으로 더 자주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자동화로 직무가 재편되고, AI를 활용해 더 큰 성과를 내는 인재와 그렇지 못한 인재의 격차가 벌어지며, 보상의 공정성을 묻는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 이 모든 충격은 결국 인사로 향한다. 미리 설계해두지 않으면 조직은 매번 사후 대응에 쫓기고, 인사는 그때마다 전면에 불려 나올 것이다. 변화의 속도보다 제도 설계가 늦어질 때 나타나는 장면이다.
이처럼 늘 한 발짝 늦은 인사는 반응형(reactive) 인사다. 사실 우수 엔지니어의 해외 유출과 이공계 인재의 의대 쏠림은 오래전부터 울린 경고음이었다. 낡은 평가와 보상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도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인사 시스템은 기존 경로에 의존했고, 실질적 변화는 더뎠다. 결과론적이지만 삼성전자가 2024년 10월 반도체 실적과 관련해 반성문을 내놓았을 때 주식 기반 보상, 엔지니어링 레벨 기반 평가·보상 같은 제도를 과감히 실험했다면 어땠을까.
AI시대, 선제형 인사가 필요한 이유
AI로 인해 산업 지형과 시장 경쟁이 재편되는 지금, 필요한 것은 선제형(proactive) 인사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조직 구조와 시스템을 정비하고, 변화의 흐름을 읽고 용기 내어 한 발짝 앞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지금 인사가 보여줘야 할 야성이다. 하지만 이 다시 없을 기회 앞에서, 한국의 인사는 스스로 새 길을 내지 못하고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낡은 제도는 손대기 두렵고, 새 제도는 검증되지 않았다고 미룬다.현재 한국의 인사 제도는 상당 부분 외부 모델을 벤치마킹하며 발전했다. 산업화 시기에는 일본식 고용 관행을, 21세기 이후에는 미국식 성과주의 모델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제 어느 쪽도 충분한 답이 되지 못한다. 평생직장과 연공서열을 전제로 한 과거의 인사제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미국 제도를 그대로 가져올 수도 없다. 실리콘밸리의 인사 모델은 기본적으로 서비스업과 플랫폼 비즈니스, 엔지니어 중심으로 설계된 소프트웨어 기반 산업의 문법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첨단 제조업에 성공한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한국이 그 드문 사례다. 최첨단 기술 리더십과 현장의 숙련도를 함께 아우르는 선제형 인사의 새 틀이 필요하다. 한국 산업이 더 이상 패스트 팔로어로 머물 수 없는 것처럼, 인사도 마찬가지다. 인사에 야성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 시대의 서막에서 정작 인사가 이슈의 전면에 등장했다. 다시 인사가 보이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인사가 제때,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