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제일 싸다"…애플 한마디에 쿠팡부터 난리 [권 기자의 장바구니]
기존 재고 찾는 ‘막차 수요’ 확산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쿠팡 등 주요 온라인몰에서는 아이패드와 맥북 등 애플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애플의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진 뒤 기존 가격에 판매되는 재고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몰린 영향이다. 일부 소비자 커뮤니티에서는 “가격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 “이번 물량이 사실상 막차 아니냐”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애플은 가격 인상 배경으로 반도체 가격 급등을 들었다. 애플 측은 “AI 데이터센터의 급속한 확대로 메모리 반도체와 저장장치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급증해 부품 가격이 급등했다”며 “부품 가격이 이토록 급격하고 크게 오른 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전자제품 가격 흐름 분기점
애플의 가격 인상은 글로벌 전자제품 가격 흐름의 분기점으로 받아들여진다. 애플은 장기 공급 계약과 대규모 선주문, 자체 설계 최적화 등을 통해 원가 상승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가장 큰 기업으로 꼽힌다. 그런 애플마저 가격 인상에 나섰다는 것은 반도체발 원가 부담이 최종 소비자 가격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이번 가격 인상의 배경에는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있다.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에는 고성능 반도체뿐 아니라 메모리, 저장장치, 전선, 냉각장치, 전력 설비가 대량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고부가 제품에 생산능력이 우선 배정되면서 스마트폰, 노트북, 가전 등에 들어가는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은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전자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소비자들은 이미 가격 인상 가능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온라인몰에서는 기존 가격으로 판매되는 제품을 찾는 수요가 늘고, 일부 인기 모델은 재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애플 제품은 가격 변동에 소비자 반응이 빠른 편”이라며 “공식 가격 인상 소식이 나오면 기존 재고를 먼저 확보하려는 수요가 붙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등 줄줄이 인상 가능성
문제는 가격 인상이 애플 제품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도 올해 스마트폰 가격을 일부 인상했고, 닌텐도와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 게임기 업체들도 가격을 올렸다. 델, HP, 레노버 등 PC 업체 역시 원가 부담을 이유로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반도체발 물가 충격은 전자제품을 넘어 소비재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데이터센터 건설 수요가 늘면서 전기료와 전선, 냉각장치, 관련 인건비까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AI 인프라 투자가 반도체 가격을 밀어올리고, 이 비용이 스마트폰과 노트북, 가전 가격에 반영되는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칩플레이션은 이제 시작”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앞으로도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서다. 반도체 가격 상승이 일시적 공급 부족을 넘어 구조적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자리 잡으면 소비자는 전자제품을 살 때마다 더 높은 가격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신제품 출시 직후 가격이 높고 시간이 지나면 할인 폭이 커지는 흐름이 일반적이었다”며 “지금은 부품 가격이 워낙 빠르게 오르다 보니 소비자 사이에서 ‘오늘 사는 게 제일 싸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 기자의 장바구니는 기자가 직접 담은 현장 체감 물가와 식품·유통 트렌드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몰 등을 오가며 실제 장바구니에 담긴 가격 변화를 추적하고, 신제품 출시와 소비 흐름까지 함께 짚습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