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서쪽 끝에서 태초의 지구를 마주하다
대자연의 신비 간직한 카자흐스탄 망기스타우
백악 절벽·붉은 사막 공존하는 '지형 박물관'
수천만 년 전 바다 흔적, 소금 평원으로 남아
석회암·철분층 겹쳐진 '티라미수 협곡'도 장관
백악 절벽·붉은 사막 공존하는 '지형 박물관'
수천만 년 전 바다 흔적, 소금 평원으로 남아
석회암·철분층 겹쳐진 '티라미수 협곡'도 장관
대부분 여행자는 최대 도시인 알마티를 통해 카자흐스탄을 만난다. 천산산맥을 배경으로 한 도시 풍경과 에메랄드빛 호수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다. 유럽의 산악 국가를 떠올리게 하는 자연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 직항 노선 확대와 함께 여행 정보가 늘어난 점 덕분에 카자흐스탄은 최근 몇 년 사이 신흥 여행지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카스피해를 향해 시선을 옮기는 순간 카자흐스탄은 전혀 다른 문법으로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 무대가 바로 서부 망기스타우다.
살아 있는 지형 박물관
망기스타우주의 주도인 악타우는 카스피해 연안의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바닷가와 사막 기후 특유의 거친 상호작용은 곳곳에 놀라운 흔적을 남겼다. 짙푸른 카스피해와 눈부신 백악(白岳) 절벽, 외계 행성 같은 붉은 사막이 공존하는 이곳은 그야말로 거대한 ‘살아 있는 지형 박물관’이다.
‘공의 계곡’으로 불리는 토리시는 여행자가 첫 번째로 마주하는 시각적 충격이다. 악타우 공항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아 대개 여행 일정의 맨 앞칸을 차지한다. 토리시는 수천만 년 전 바다였던 이 구역의 퇴적물 속 광물이 둥글게 뭉쳐 자라난 특이한 지형으로 망기스타우의 낯설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가장 빨리 체감할 수 있는 곳이다. 작게는 축구공 크기부터 크게는 지름 3m에 달하는 거대한 구형 바위들이 지평선 끝까지 아득하게 널려 있어 마치 쥐라기 공원의 공룡 둥지 한가운데 숨어 들어온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코칼라는 망기스타우가 한때 거대한 바다였음을 증명하는 장소다. 화강암 암석이 흩어진 듯한 색감. 눈이 내린 것 같기도, 평범한 암석 같기도 한 바위의 실체는 수천만 년 전 바닷속에 가라앉은 생명들의 흔적이다. 고대 바다에 살던 미세 생물들의 껍데기와 퇴적물이 압축돼 석회암과 백악층을 이루고 비와 바람은 지금의 풍경을 직조해 냈다.
지폐에도 실린 복티산
망기스타우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보즈지라 지역이다. 이곳으로 향하는 길목에선 카자흐스탄 1000텡게 지폐에 새겨진 복티산을 마주하게 된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뒤집힌 배 혹은 크게 잘라낸 조각 케이크가 연상된다. 새하얀 백악층과 짙은 붉은빛의 점토층, 빛바랜 갈색 퇴적층이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여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어내는 흙산은 인간이 떠올릴 수 있는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한다.
‘티라미수 협곡’이라는 애칭이 붙은 키질쿱도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산화된 붉은 철분 층과 새하얀 석회암층이 끝없이 겹쳐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일정한 간격으로 차곡차곡 얹힌 퇴적층은 영락없이 티라미수 케이크를 닮았다. 멀리서 볼 땐 달콤한 디저트 같지만 가까이 가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빗물 흔적 가득한 흙더미일 뿐이다. 곳곳이 쩍쩍 갈라져 발이 푹푹 빠지는데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짙은 풀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이 척박한 틈새를 뚫고 꿋꿋이 살아남은 야생 허브들이다. 황량한 대지에서 오히려 강렬한 향기를 뽐내며 생명력을 증명하는 모습은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망기스타우를 여행하려면 감수해야 할 점도 있다. 통신과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아 전문 오프로드 투어가 필수다. 인근에 숙소가 드물기 때문에 밤하늘의 별을 이불 삼아 캠핑을 해야 한다. 당연히 통상의 여행보다 고되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오라기 하나 사이에 두지 않고 자연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은 그 수고로움을 훨씬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한다. 거친 사막의 바람, 텐트 위로 쏟아져 내리는 별빛, 발밑에서 부서지는 수만 년 전의 흙까지. 카자흐스탄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중앙아시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완벽한 무대가 아닐까.
김새봄 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