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현대무용축제 ‘조머체네(SOMMERSZENE) 2026’에서 안무가 마르쿠 다실바 페헤이라의 신작 ‘F*cking Future’가 초연됐다.  ©Joao Octavio Kopie
6월 8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현대무용축제 ‘조머체네(SOMMERSZENE) 2026’에서 안무가 마르쿠 다실바 페헤이라의 신작 ‘F*cking Future’가 초연됐다. ©Joao Octavio Kopie
모차르트와 카라얀이 나고 자란 클래식 음악의 도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그 도시가 숨겨둔 가장 뜨거운 전위의 순간을 만났다. 잘츠부르크 현대무용 축제 ‘조머체네(SOMMERSZENE)’에서다.

한여름의 잘츠부르크는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의 거대한 메카다. 카라얀의 영광이 서린 고풍스러운 무대,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가 구시가지를 가득 채우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이 도시의 상징이다. 7~8월, 고전의 미학이 이 도시를 감싸기 약 한 달 전부터 잘츠부르크는 전혀 다른 주파수로 진동한다. 우아한 석조 건물 사이로 거칠고 생생한 현대의 호흡을 불어넣는 또 하나의 축제, 조머체네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축제는 1969년 시작됐다. 올해는 지난 6월 8일부터 23일까지 보름간 펼쳐졌다. 꼭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체네(SZENE)극장에선 연평균 250일, 100~130편 넘는 퍼포먼스가 열린다. 이번 축제 기간엔 오스트리아 초연 다섯 편과 세계 초연 두 편을 포함해 총 14편의 엄선된 작품이 유럽 전역의 관객을 맞았다. ‘클래식 축제의 도시’인 잘츠부르크의 이미지를 벗어나 이 시대 가장 뜨거운 실험적 무용의 세계가 도시 전역에서 열렸다.

올해 조머체네의 라인업은 현대무용계의 역사를 관통하는 거장의 마스터피스부터 무서운 기세로 떠오르는 신예들의 데뷔작까지 촘촘하게 연결됐다. 안무와 퍼포먼스가 단순한 유희를 넘어 어떻게 시대의 거울이 될 수 있는지 증명하는 무대였다. 지역 예술가를 넘어 전 세계 안무가와 무용수를 품는 조머체네의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사샤 발츠의 <Travelogue I Twenty to eight>

축제의 포문을 연 것은 현대무용의 살아 있는 신화, 사샤 발츠의 기념비적 초기작이다. 1993년 초연 이후 30년이 넘은 이 작품은 여전히 날카로운 시의성을 자랑한다. 무대의 중심은 부조리한 일상의 격전지가 되는 ‘주방’. 냉장고, 식탁, 문과 같은 평범한 오브제가 무용수의 파트너가 됐다. 신경증적인 현대인의 관계와 고독, 기괴한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그는 이 작품을 매번 새로운 캐스팅으로 발전시키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라고 불렀다.

마르쿠 다실바 페헤이라의 <F*cking Future>

유럽 현대무용계에서 가장 뜨겁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포르투갈 출신의 안무가 마르쿠 다실바 페헤이라는 2024년에 이어 이번에도 신작 초연을 조머체네에서 선보였다. 독학으로 춤을 시작한 그는 “길거리의 날것 그대로의 세포를 무대 위로 가져와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라고 작업을 정의한다. 대학에서 물리치료를 전공한 이력은 춤을 더 본능적이고 정교하게 만든다. 이번 작품은 군대식의 엄격한 규율과 클러버들의 자유로운 에너지를 충돌시키며 집단적 신체가 가진 위협을 감각적으로 다뤘다. 2회차가 모두 매진된 화제의 공연.

호자나 히베이루의 <Break the Dam>

 호자나 히베이루의 ‘Break the Dam’.   ©Bernhard Muller
호자나 히베이루의 ‘Break the Dam’. ©Bernhard Muller
잘츠부르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포르투갈·브라질 출신의 안무가 호자나 히베이루의 신작이자 세계 초연 무대는 전석 매진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인간의 신체와 대지에 축적된 ‘억압과 정체’가 집단적 해방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바닥에는 석탄 혹은 멸망한 지구의 황량한 대지를 연상시키는 검은 오브제가 깔려 있고, 5명의 무용수가 무게감과 반복, 저항을 섬세한 동작으로 표현한다. 오랜 억압으로 압박이 극에 달했을 때 미세한 움직임이 무용수 사이에 번지고, 이 흐름은 단단하게 경직됐던 무대와 신체에 균열을 낸다. 그리고 파도와 소용돌이 같은 움직임으로 변하며 막을 내렸다.

데바 슈베르트의 <잃어버린 소리들>

데바 슈베르트의 ‘잃어버린 소리들’ ©Deva Schubert
데바 슈베르트의 ‘잃어버린 소리들’ ©Deva Schubert
올해 행사의 또 다른 화제작은 데바 슈베르트의 ‘missed tones (in the corridor)’였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목소리와 신체를 탐구해온 안무가 데바 슈베르트가 잘츠부르크 미술협회에서 장소에 특화된 퍼포먼스를 약 40분간 펼쳐냈다. 붉은 조명으로 물든 미술관 복도를 2명의 퍼포머가 점령한다. 인공지능(AI)이 화두인 시대, 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절과 방해를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형태’로 해석한 작품이다. 완벽한 일치 대신 말을 더듬거나 딸꾹질을 하고, 두 목소리 사이에 간신히 존재하는 불완전한 멜로디와 공명에 집중한다. 미술협회 안에 자리한 링갈레리 복도를 따라 이동하며 펼쳐진 이 퍼포먼스에 입장한 관객은 자리에 앉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데바 슈베르트와 지히로 아라키 등 2명의 퍼포머를 따라다니며 관람했다. 기계적이면서도 동물적인 소리, 숨소리 등 디지털 시스템의 파편적 음성이 인간의 음성과 뒤섞이며 소통의 취약함과 기묘한 연결감을 만들어냈다. 비좁은 미술관 복도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공연이다.
80대 나이로 무대에 선 도리스 울리히. ©Alexi Pelekanos
80대 나이로 무대에 선 도리스 울리히. ©Alexi Pelekanos
올해 축제의 피날레는 도리스 울리히와 주자네 키른바워의 듀엣이 장식했다. 빈 국립오페라단 전 수석 솔로 무용수로 40대 중반 현역에서 물러난 울리히는 “80세가 넘은 나이에 무대에 오르며 늙어가는 몸은 발레 무대에 설 자리가 없다. 하물며 여성의 몸이라면 더욱 그렇다”는 말을 뒤집는다. 더 이상 젊은 시절의 완벽한 발레 동작은 수행할 수 없지만, 나이 든 신체의 에너지와 힘이 어떻게 새로운 무용수와 목소리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조머체네의 매력은 극장 안에 머물지 않고 공공 공간을 모두 전위적 실험실로 쓴다는 데 있다. 바로크 양식의 유서 깊은 성당 공간 콜레기엔키르헤의 라우셴 극장에선 전자음악과 함께 리듬체조용 리본을 흔드는 퍼포먼스가 열렸다. 코르넬리아 뵈니슈와 카타리나 슈로트는 자연과 내면에 새겨진 유기적 패턴을 소음 속에서 찾아내는 신비로운 경험을 선보였다. 잘츠부르크 시청 앞 광장엔 디미트리 드 페로의 사운드 설치 작품 ‘SCHAUFENSTER #1’이 축제를 함께했다. 잔디밭이 설치돼 관객은 땅에 눕거나 거닐며 주변 환경과 음향이 나누는 대화에 자연스럽게 동참했다.

조머체네의 티켓 가격 정책은 다른 페스티벌과 결을 달리한다. ‘당신이 낼 수 있는 만큼 지불하세요(Pay what you can)’라는 티켓 정책으로 자신의 재정 상황에 따라 10유로에서 40유로까지 입장권 가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공연 시작 30분 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웜업 대화’, 공연이 끝난 뒤 펼쳐지는 파티 공간과 댄스 무대는 또 다른 라이브 축제가 됐다.

잘츠부르크=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